한국일보

붉은 가을이고 싶다

2020-10-24 (토) 김영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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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뒷마당까지 들어왔는데 나의 생활은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초봄을 벗어나지 못한다. 벌써 오래전, 한껏 움츠린 채 맞이하던 잿빛 풍경 속에 모든 것이 마법에 걸린 듯 정지되어 있다. 변함없는 생활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그 변함없는 시간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하다. 바쁘고 힘겹다며 허둥거리던 삶에 끝없는 휴식을 주려고 작정했는지 코로나바이러스의 무차별 공격은 햇빛 속에 활보하던 인간의 행보를 일순간에 멈추게 했다.

가을 풍경에 둘러싸인 동네에 정적이 감돈다. 평소에도 이웃사람 발길이 뜸한 동네인데 요즘은 더 그렇다. 가면처럼 마스크를 쓰고 이웃과도 낯가림하며 동네 길을 에둘러 산책하다가 어느 집 앞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가을은 멈춤의 계절이고 소소한 것을 마음에 담게 만드는 계절. 나는 그 집 앞마당에서 붉게 타는 단풍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색깔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흔한 캐나다 단풍은 아니다. 아기의 다섯 손가락 모양을 닮은 빨간 이파리가 고향의 단풍나무를 그대로 뿌리째 옮겨다 심은 것만 같다.

고국을 떠난 지 오래된 나는 선홍빛 단풍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살갑게 반기며 다가오는 붉은 웃음에 내 마음에도 혈색이 돈다. 사라져버린 줄 알던 감정들도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대상을 만나면 생명을 되찾는가 보다. 사라진 게 아니라 냉동되었던 것처럼.


일상과 휴가의 경계가 지워지면서, 시간도 길을 잃은 듯 방황한다. 드러나지는 않아도 삶의 샛길과 곁길과 두름길에서 얻던 활기와 재미와 변화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유예된 시간 속에 마냥 길어지는 휴지[休止]로 인해 권태와 불안이 일상에 스며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아무리 원하던 휴가도 휴식도 한시적이고 끝이 보일 때 단맛이 나고 소중한 것이다. 영원이라는 형벌의 괴로움을 알리던 시시포스의 신화를 떠올린다. 내일도 모레도 오늘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때문인가.

성큼 다가올 겨울이 하얗게 얼굴을 들여 밀 때쯤이면 바이러스의 낯익은 표정에 담담해질까.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어제 밀어 올렸던 똑같은 돌을 매일같이 산정상까지 올리는 일도 익숙해져서 괜찮다면 그것도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삶을 벗어나고 싶어 못 견디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결국 ‘어떻게’ 라는 방법에 이른다. 바윗덩어리와 이야기를 하며 밀어 올리든지 노래를 하며 밀든지 욕을 하고 소리 지르며 올라가든지 춤을 추며 끌어올리든지. 어차피 되풀이될 일이라면 삶의 방법을 달리하여 변화를 줌으로써 권태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혼자서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과 휴식을 조율하는 것도 좋겠다. 비록 이 길고도 암울한 시간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해도, 강제로 주어지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다.

억지로나마 생활을 단도리하던 끈이 조금 헐거워진 틈을 타 바이러스가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숨 돌리며 한시름 놓기가 무섭게 인간의 발이 다시 묶이고, 허공을 휘젓는 손길은 잡을 곳 없어 방황하고, 불안한 마음이 요동친다. 바람에 바싹 말라 서걱거리는 낙엽을 닮은 내 삶도 가을 문턱에서 같은 소리를 낸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머지않아 시든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노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또한 금세 스러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생이 소중한 이유도 유한하기 때문 아닐까.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없다. 그 무상함에서 존재의 가치와 현재의 소중함을 배우며 오늘을 산다. 내일은 오늘과는 또 다른 오늘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상한 휴가’ 동안, 이 상황에 맞는 일을 찾아보리라 다짐한다.

어려운 시기에는 비록 헛된 다짐이라도 있어야 견딜 수 있다. 누군가의 시린 손을 덥히려면 내 손 먼저 따스해야 한다며 제 몸을 붉게 물들인 단풍나무. 그 따뜻한 색만으로도 굳었던 마음이 풀리듯이, 온 세상이 앓고 있어도 바이러스 퇴치를 주도하는 손길과 거리두기의 자발적인 동참이 이어진다면 빛은 보일 것이다. 그렇게 암흑의 터널도 끝을 보이리라. 하지만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긍정적일 수 있을까.

어쨌거나 가을은 가을. 정신력이 약하면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시기이다. 나무와 교감하던 초록이 얼마 전까지의 네 모습이었다고, 바닥에 뒹구는 낙엽에서 그때의 그 뜨거웠던 시간을 찾아서 읽어보라고 나에게 이른다. 나는 열정이라는 이름보다 더 뜨거운 단어를 알지 못한다. 이것을 붙잡고 시간을 견뎌보리라. 모든 것이 익어가고 저마다 결실을 거두는 가을. 복잡한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단순하게 익어가는 붉은 가을이고 싶다.

<김영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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