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든의 문제

2020-10-2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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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은 미국에서 정치 경력이 가장 긴 사람의 하나다. 30살에 1972년 델라웨어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6선을 했다. 그리고는 버락 오바마 밑에서 부통령을 8년 했다.

문제는 이런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을 하면서 1991년 가장 성공적인 군사 작전의 하나인 걸프전 참전에 반대했고 가장 큰 재난의 하나였던 2002년 이라크 침공에는 찬성했다. 거기다 이라크 패전을 막아준 2007년의 미군 증파에 반대했다.

그의 또 하나 문제는 정치적 소신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1994년 그가 지지한 ‘강력 범죄 통제법’ 때문에 흑인들이 감옥에 많이 갔다고 비난받자 사과했으며 “화석 연료를 없애자”고 하다가는 미국을 최대 석유 생산국으로 만들어준 ‘프래킹’은 금지하지 않겠다고 하고 트럼프 감세안을 철폐하겠다고 했다가 연소득 40만 달러 이하인 사람에 대해서는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가장 의심하게 한 것은 ‘법원 채우기 계획’(court packing plan)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그는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대법관 수를 늘리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끝내 거부했다. 그 후 기자가 이에 관해 미국민들이 알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럴 자격이 없다”(No, they don’t deserve)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선거가 끝난 후 말해주겠다고도 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있을 수 없는 답변이다.

그가 답변을 꺼리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법관 수를 늘려 민주당 지지자로 채우겠다고 하면 중도파가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 골수 민주당 좌파의 분노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비겁한 태도다.

이 문제에 대한 최선의 답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대선 승자가 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는 4년 전 자신들의 입장을 뒤집고 에이미 배럿 지명과 인준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당내 일각에서는 대법관 수를 늘려 민주당 지지자로 채워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당마다 대법관 수를 늘려 자기 편으로 채워넣으면 당파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대법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미셸 오바마 여사가 말한대로 그들이 낮은 길로 간다면 우리는 높은 길로 가야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그는 소신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단번에 굳혔을 것이고 극좌파가 떨어져 나간 이상 중도표를 흡수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면 그냥 “지금 우리로서는 대법관 수를 늘릴 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만 말했으면 된다.

이런 그의 우유부단함을 눈치챈 좌파는 연방 상원이 민주당 손으로 넘어갈 경우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다. 법을 바꿔 정치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할 경우 아예 연방 직할시인 워싱턴 DC와 자치령인 푸에르토 리코를 주로 독립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곳은 민주당 색이 강한 곳으로 연방 헌법이 각 주마다 2명의 상원의원을 내도록 하고 있어 그렇게 될 경우 사실상 4명의 민주당 상원의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연방 하원은 이미 지난 6월 DC를 주로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푸에르토 리코 주 승격은 오바마도 지지하고 있다.

미국내 영토를 주로 만드느냐 마느냐는 연방 의회의 결정 사항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를 한 당의 정치 권력 강화를 위해 해서는 안 된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 1959년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동시에 주로 승격된 것도 지금은 반대지만 민주당 색이 강했던 알래스카와 공화당 색이 강했던 하와이를 함께 받아 정치적 밸런스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것은 1854년 ‘캔사스-네브라스카 법’을 통과시켜 북위 36도 30부 이북에서는 노예주를 금지하기로 한 1820년의 ‘미주리 타협’을 폐기하는 바람에 신생주를 자기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이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됐음을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역사상 가장 자격 미달인 도널드 트럼프는 하루 속히 백악관에서 몰아내야 하지만 최근 그의 행보를 보면 바이든에게서도 별로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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