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9월30일 한국의 KBS가 방영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이 프로가 나가자마자 시청자들이 받은 충격과 감동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한국은 나훈아 신드롬에 빠져있다.
나는 원래 나훈아라는 가수나 트로트라는 대중가요에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카톡으로 받은 프로그램 동영상을 2시간 반 넘어 시청하고 나서는 한동안 가슴이 고동쳐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현장에 관중을 불러 모으지 못한 가운데,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의 1,000여명의 팬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생방송 못지않게 소통한 점이다. 또한 분위기를 고조시킨 대형 스크린과 압도적 스케일의 무대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공연을 보면서 빠져들고 충격마저 느끼게 된 것은 바로 나훈아의 실체를 새로 알게 된 때문이다. 73세라는 그의 나이를 뒤에 알았지만 어쨌든 흘러간(?) 고령의 가수가 내뿜는 카리스마적 가창력이 폭발적이었다. 그는 그저 남이 만들어준 가요를 받아 부르는 뽕짝 가수가 아니고 800여 곡을 직접 작곡, 작사한 진짜 실력 있는 예술인이다.
나훈아는 가창력도 대단하지만 무대에서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때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서 나훈아의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 것은 공연 중간 중간에 드러낸 그의 소신 발언이었다. 김동건 아나운서와의 인터뷰에서나 관객들에게 건넨 말들 속에서 그만의 일관되고 확고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훈장을 거절한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유튜브나 카톡을 통해 나온 일화에는 그가 북한의 평양 공연도 거부했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파티 초청도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어떤 권위나 정치적 위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는 가수’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지키겠다는 일관된 철학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연 진행 중에 한 발언들은 지금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넘는, 시대적 상황에 맞는 뼈 있는 비판이었다. “역사적으로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왕이나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다. 이 나라를 지킨 건 보통 우리 국민, 여러분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 시점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누구를 겨냥했는 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또 자기의 콘서트를 제작하고 방영한 KBS에도 일침을 가했다.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 두고 보시라. KBS가 거듭날 것이다.” 권력에 흔들리지 말고 국민만 보고 가면서 거듭 날 것을 촉구한 멘트였다.
이런 예민한 발언들이 어떻게 제작 과정에서 잘리지 않고 그대로 나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후일담으로 알게 됐는데 그는 일체의 출연료를 받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일점, 일획도 자르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프로그램 제목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도 그가 정했다는 얘기다. 그 제목이 나로서는 심상치 않게 들린다. 다시 태어나라는 요구 아닌가?
그의 신곡 ‘테스형!’에서 “세상이 왜 이래”라고 묻는 건 지금의 고단한 삶을 소크라테스 같은 현자의 지혜를 빌려 들어보고자 하는 절실함이 실려 있다. 결국은 테스형도 풀 수 없다니 슬픈 일이다. 나훈아의 외침은 멀리 이곳 LA에 사는 동포사회에까지 메아리쳐 울린다. 나훈아가 왜 이래라고 묻는 세상은 이곳 LA, 내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내일을 불안해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 산불까지 겹친 최악의 오늘을 살며 고립에 쫓기고 있다. 이건 테스형이 풀어줄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엔 나에게 돌아온다.
오늘 그리고 하루하루 삶의 보람과 행복의 조각들을 모아 내일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오늘을 견뎌내는 격려와 용기가 요구된다. 나훈아가 그런 용기와 격려를 우리에게 보낸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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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자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