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를 찍을까

2020-10-15 (목) 12:00:00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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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벨 소리가 났다. 시의원에 출마한 한인 후보가 다녀갔다고 한다. 부부가 나란히 마스크를 한 채 찾아와 문 앞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다고 했다. 걸어 다니며 방문 캠페인을 하고 있구나. 알았으면 나와서 인사라도 할 걸-.

이 동네에는 처음 한인 시의원이 탄생하게 되어 있다. 지난 30여년 간 그렇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이었다. 시 전체가 단일 선거구에서 5개 지역 선거구로 나뉘면서, 이 선거구엔 한인 후보 두 명만 출마했다. 한인 시의원 탄생이 눈 앞에 다가 온 것이다.

문제는 두 후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배달되어 온 선거 홍보물을 살펴 봤으나 애매했다. 이번 선거 때 시 판매세 1.25% 인상과 폭죽의 판매금지 여부도 결정된다고 한다. 해마다 독립기념일 무렵이면 폭죽 소리가 지나치게 요란하긴 했다. 공지의 택지 개발 문제는 몇 년째 이 지역의 주요 현안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두 후보의 생각이 어떤지 알기 어렵다.


캘리포니아는 한창 선거가 진행중이다. 지난 5일 투표용지가 발송되기 시작하면서 우편투표와 함께 조기투표를 할 수 있는 현장 투표센터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동네 이슈에는 깜깜이었다. 세일즈 택스 인상 문제가 이번 선거에 부쳐지는 것도 이제 알았다. 너무 트럼프, 워싱턴의 전국 정치에 정신이 쏠려 있었나. 거기에다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이번 대선은 물론 대통령 선거가 최대 관심사다. 극적인 흥행요소도 많다. 캘리포니아 라티노만 해도 25% 내외는 트럼프 지지라고 한다. 라티노 트럼프 지지자들은 입만 닫고 있을 뿐이다. 한인들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반이민 정책을 쏟아내는 트럼프에 반대가 많을 것 같으나 천만에, 보수 기독교인이나 사업하는 분 중에는 트럼프 지지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 “무슨 대통령이 …” 고개를 흔들면서도 민주당 정책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이도 있다. 아무도 뽑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선택이 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캘리포니아의 한인 유권자들이 100%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해도 트럼프는 한 표도 가져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 아래서 그 정도로는 어림없을 정도로 캘리포니아는 압도적인 민주당 강세 주다. 돈이라면 모를까,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캠프의 관심 외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의 대통령 선거는 한인 유권자들의 손을 떠났다. 이쯤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은 줄였으면 한다. 대통령 선거만큼, 혹은 그 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우선 한인 후보들-. 당적에 관계없이 한인 후보에게는 한 표를 던졌으면 한다. 한인 공직자들이 속한 당의 입장에 따라 때로 커뮤니티의 의사와는 다르게 처신할 때도 있다. 배신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속좁은 생각이다. 어차피 정치라는게 당을 떠나서 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이슈가 정치적이거나 당파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입장을 이해하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민 생활중에 문화나 사고방식의 차이로 캄캄한 벽에 부딪혀 보았던 사람들은 한인 공직자의 소중함을 안다. 그들이 통로와 대변인 역을 할 수 있다.

각 시의 시의원이나 교육위원 등은 커뮤니티 봉사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몇몇이 단골로 돌아가며 지역 영향력을 장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새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신선한 의욕, 에너지, 아이디어를 사야 한다. 정치 브로커처럼 된 지역 정치인이 있다면 물갈이 해야 한다. 허명에 속아 그들을 계속 그 자리에 앉혀 둬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돌려 먹기로 부패의 냄새가 나는 직업 정치꾼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폭동 후 많은 한인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을 나게 했던 장본인도 돌아서 보면 어느 새 커뮤니티의 후원자연 하는 것이 정치판이다. 언제까지 이들에게 기댈 것인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신인도 격려해야 한다. 노회한 기성체제에 도전하는 이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용기에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힘을 내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2개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의안들이다. 처한 입장에 따라서는 실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많다.

프로포지션 15는 경제적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린다. 통과되면 상업용이나 산업용 부동산 소유주는 증세를 각오해야 한다. 연 125억달러 정도의 세수를 여기서 기대하고 있다고 하니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수계 우대정책의 재시행(프로포지션 16), 일부 17세까지 투표권 확대(18), 렌트 콘트롤 강화(21), 우버 운전자의 정규직 여부(22), 보석제도의 존속 여부(25) 등도 이번 선거에서 결정된다.

지금은 대통령 선거 보다 주와 살고 있는 카운티, 시의 발의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자신의 권익을 챙길 수 있는 더 실질적인 일로 보인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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