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년전인 2016년 10월 7일 ‘액세스 할리웃’ 스캔들이 터졌다. NBC 방송 프로인 ‘액세스 할리웃’을 찍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여자들은 상대가 스타면 어떤 짓을 해도 그대로 놔둔다”며 사실상 성폭행을 저지른 사실을 실토하는 장면을 녹음한 테입이 공개된 것이다.
그 때 대다수 정치 평론가들은 트럼프의 정치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여론 조사에서도 힐러리에 줄곧 밀리고 있는데다 성폭행을 자인한 인물을 미국인들이 대통령으로 뽑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비판과 사퇴 요구가 이어졌고 트럼프 본인도 자신이 선거에서 이기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트럼프가 대선 승자가 된 것이다. 이는 트럼프 다음으로 거짓말을 잘 하는 힐러리의 나쁜 이미지에다 대선을 불과 며칠 남겨두고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힐러리 이메일을 다시 조사한다고 밝히는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었지만 트럼프가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체 유효표 총 1억2,880만 표에서는 300만 표를 지고도 대선 결과를 결정지을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미시건3개 경합 세 주에서 아슬아슬하게 7만 표를 이기면서 승자 독식 원칙에 따라 이 세 주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바람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후 3년간 운은 트럼프 편이었다. 수많은 막말과 거짓말,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미국민 40%의 그에 대한 지지는 확고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경제였다. 트럼프 집권 기간 중 실업률이 사상 최저로 내려가고 꾸준히 경제가 성장하면서 올 재선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올 초 코로나라는 돌발 사태가 터진 것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미국내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세계 최고를 기록했음에도 트럼프는 마스크와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소독제를 주사하면 된다느니 바이러스가 기적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느니 허황된 말만 늘어놓다가 급기야는 본인이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걸리고 나서도 코로나는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느니 자신은 다 나았다느니 등등 검증되지 않은 말만 늘어놓고 있다.
이런 그의 태도는 그의 고정팬이던 노인층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4년 전에는 65세 이상 노인의 트럼프 지지는 힐러리보다 13% 포인트 높았지만 지금은 바이든 지지가 트럼프보다 4% 포인트 높다. 코로나 사망자의 80%가 65세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트럼프는 2016년 자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백인 유권자들로부터도 인심을 잃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힐러리보다 15% 포인트 백인 표를 더 얻었지만 최근 월스트릿 저널 조사에서 이 차이는 9% 포인트로 줄었고 PBS 뉴스아워 조사 결과에서는 동률을 기록했다.
거기다 최근 대선 후보 토론에서 끊임없는 끼어들기로 진행을 방해한 것이 부동층의 인심이반을 불러 평균 7%이던 바이든과의 지지율 격차는 10%가 넘게 벌어졌다. 지난 주말 발표된 워싱턴포스트 ABC 여론 조사 결과는 바이든 54%, 트럼프 42%로 지지율이 12% 포인트 차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차이가 벌어지자 공화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백악관은 이미 물 건너 갔고 상원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을 내보이고 있다. 연방 하원과 백악관에 이어 상원까지 넘어간다면 에이미 배럿을 대법관에 앉히더라도 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을 비롯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연방 상원은 53대 47로 공화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이 중 메인과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와 콜로라도가 민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져왔다. 그러나 트럼프 인기가 하락하면서 한 때 안전한 것으로 보였던 아이오와, 캔사스, 몬태나, 알래스카, 사우스 캐롤라이나마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 돼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8월말 현재 민주당 모금액은 4억6,000만 달러로 공화당의 3억2,000만 달러를 압도하고 있다. 가뜩이나 열세인 트럼프는 자금 부족으로 경합주 광고마저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은 아예 정강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트럼프에 일임했다며 이제 와 상원의원들이 트럼프와 거리를 두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라앉는 트럼프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 상원까지 함께 침몰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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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