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분류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20대 흑인 여직원 케이트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팔꿈치가 닿을 정도의 지근거리에서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옆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으니 여간 불안하고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참다못한 내가 말을 걸었다. “케이트, 오늘 마스크 잊고 나왔어요?” “…” “케이트, 같이 일할 때에는 마스크를 써야지요.” “…” “케이트, 내게 마침 깨끗한 여분 마스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을 써요.”
나는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케이트에게 건네주었다. 마스크를 받아 든 케이트는 비닐봉지로 포장된 푸른색 마스크를 힐끗 쳐다보더니 책상 위로 휙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상대방의 무례함에 기분이 언짢아진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케이트, 당신 자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되어있어요. 어서 마스크를 쓰세요.” 거듭되는 나의 부탁에 대꾸조차 하지 않던 케이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스크가 바이러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당돌하게 따져 묻는 케이트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스크가 바이러스 예방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고 과학이에요. 그래서 질병통제센터 CDC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법으로도 마스크를 쓰도록 되어있지 않나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하는 당신은 지금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거예요.”
듣고 있던 케이트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남의 일 간섭말고 당신 일이나 신경 쓰세요.” 어처구니없는 말에 내가 따져 물었다.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에요? 내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란 말이에요. 당신이 센스 있는 좋은 사람이라면 남의 건강도 배려를 해야지요.” 센스 없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케이트는 “누가 센스 없는 사람인지 모르겠네…”하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아무리 말하고 마스크까지 손에 쥐어줘도 착용을 거부하니 하는 수 없이 선배 여직원 모니카에게 부탁을 했다. 선배로서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모니카는 자기는 그런 말 할 수 없으니 수퍼바이저에게 말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수퍼바이저에게 찾아가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고 케이트에게 마스크 착용을 지시해줄 것을 부탁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40대 흑인 남성 수퍼바이저는 ‘So What?’ 하는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만 볼 뿐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세계적인 팬데믹 시대에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전염병 예방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단 말인가.
어쩌면 이것도 인종간의 뿌리깊은 갈등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씁쓸해졌다. 평소 예쁘장스럽게 보이던 케이트가 갑자기 요괴인간처럼 보였다.
오늘, 케이트가 드디어 마스크를 쓰고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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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