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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의 가출

2020-10-06 (화)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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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때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어른들의 잔소리에 곁들여 결심을 굳힌 건 탐독 중이던 헤세의‘싯다르타’가 친구 고빈다와 길을 떠나는 장면! 나 자신의 꿈과 현실을 헷갈린 덕분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로 한껏 고양된 13살 자아의 치기어린 선택으로 집은 나왔는데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앞서 가본 광화문 조선일보사 건물이 떠올랐다.

헤세 시리즈 직전, ‘사반의 십자가’를 읽고 나의 어린 가슴은 더블 방망이질로 울렁거렸다. 천상이 아니라 지상 낙원건설을 꿈꾼 혁명가, 예수의 십자가 왼편에 매달렸다가 끝내 구원을 거부하고 죽은, 소설 속 사반은 나의 우상이었다. 읽는 소설마다 우상이 너무 자주 바뀌긴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궁금한 건 못 참아!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계시던 김동리 작가를 찾아갔다. “선생님, 사반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분은 웃음으로 바라보시더니 서가에서 손수 집필하신 책 몇 권을 꺼내어 사인을 해주며 말씀하셨다. “글쓰기 연습을 열심히 하시오. 훌륭한 소설가가 될 것이오.”


흐읍! 내 신파조 대사를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쥐구멍인데, 아무튼 존경하던 작가의 조언은 어디 가고, 머릿속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신문사 건물이 안전한 밤샘 장소로 당첨! 며칠이나 버텼을까, 집으로 다시 들어간 이후의 일은 별로 기억에 없으니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코로나 시대, 솟구치는 스트레스와 가정폭력으로 무작정 가출하는 소년 소녀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10대 가출 숫자가 해마다 증가, 1년 300만 명에 이르며, 70퍼센트가 여성이다. 이유는 부모와의 불화가 47퍼센트. 이중 반은 애들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부모가 찾지 않는 경우다. 거리에 나선 아이들 중에 셸터에서 보호받는 케이스는 고작 7퍼센트, 대개는 거리에서 지내는데 10명 중 2명은 음식, 잠잘 곳, 또는 마약을 사기 위해 자기 몸을 판다는 게 미국 가출 청소년 핫라인(800-786-2929)의 최근 통계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이들을 위해 서포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청소년 법원, 마약 법정과 연계한, 셸터 제공, 법률 지원, 교육, 직업 알선 등등, 나는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 우울 등 심리 상담을 맡았었는데 이때 만난 A의 케이스를 잊지 못한다.

성매매 현장에서 언더커버 경찰에게 구조됐을 때 A의 나이 17세. 가슴에는 가해자인 남자친구의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있었다. A는 친아버지에게 5세 때부터 성폭행을 당해오다가 13세에 가출,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마약심부름으로 돈을 벌어 음식을 사먹었다.

“14살에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나에게 난생 처음 따뜻한 말을 건넨 사람이었죠.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를 했어요.” 남자친구는 정신적, 신체적 위협을 주며 A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었다. 전형적인 그루밍 수법이다.

A는 그가 시키는 대로 몸을 팔았고, 번 돈은 그가 가졌다. “그가 나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버림받지 않으려고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지요.” 그런 A가 그루밍 인신매매의 사슬을 끊고 재활에 성공, 얼마 전, GED를 따고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A는 지금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처지가 비슷한 다른 여학생들의 멘토로 일하며 언젠가 소셜 워커가 되려는 꿈을 키우고 있다.

퓨 리서치 조사 결과, 독립하여 떠났던 자녀가 코로나 이후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케이스가 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과는 달리 뛰쳐나가는 사례 역시 급증했다. 문학 작품에 심취한 것처럼 포장을 해도 나의 가출은 들끓는 사춘기 반항이었을 것이다. 집을 나온 틴에이저들 역시 부모와의 갈등에 괴로웠다고 말한다.(신체 학대 경험 45%, 성적 학대 경험 35%)

부모의 문제인가, 10대의 문제인가?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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