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국경에는 두 나라에 나뉘어져 있지만 실상은 한 동네인 국경마을이 꽤 된다. 이런 곳에서는 생활의 편의시설들이 흩어져 있어 생활권을 나눌 수 없다. 오가는 길목에 세관이나 이민국 오피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은 한 동네를 다니듯 매일 국경을 넘나들며 산다.
알래스카의 최동단 마을인 하이더와 국경 너머 캐나다 스튜어트가 대표적인 곳이다. 알래스카에서 가느다랗게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캐나다 접경에 있는 하이더는 인구 60여명의 작은 광산 마을. 차에 개스를 넣거나, 식료품을 사거나, 빨래를 하거나, 장작을 살 때는 모두 캐나다로 넘어간다. 이런 상점들은 인구 400여명의 스튜어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전기도 캐나다 산, 주민들의 시간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맞춰져 있고, 전화도 그쪽 지역번호를 쓴다.
매년 7월1일이면 하이더 사람들은 스튜어트에 넘어가 캐나다 데이 퍼레이드를 즐긴다. 사흘 후에는 반대로 스튜어트 주민들이 하이더로 건너 온다. 7월4일에는 다채로운 미국 독립기념일 페스티발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두 나라의 연대와 결속을 상징한다. 지난 2016년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이 마을을 예로 들며 뗄레야 뗄 수 없는 두 나라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문제가 생겼다. 코비드-19 때문이다. 캐나다쪽에서 국경을 차단한 후 지금은 월 단위로 여행제한 조처가 연장되고 있다. 주민들로서는 하루 아침에 38선이 그어진 셈이다.
국경은 지금도 교역과 필수 활동일 경우 왕래가 허용된다. 예컨대 하이더의 광산에서 일하는 스튜어트의 광부들은 제한없이 국경을 오간다. 필수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 외 목적으로 미국쪽에 갔다 오면 스튜어트 주민도 14일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하이더 주민들은 가족당 한 사람이 하루 3시간씩 스튜어트를 방문할 수 있게 허용돼 있다. 차에 개스도 넣고, 장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하이더의 아이들 5명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캐나다 스튜어트의 학교에 등록돼 있으나 국경이 봉쇄되면서 학교길이 막혔다. 하이더에도 K-12 스쿨이 있었으나 등록생이 너무 적어 폐쇄됐다.
얼마 전 인터넷에 뜬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올망졸망한 꼬마 5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진을 보고 이곳 어린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산골까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두 마을 모두 코비드-19 확진자가 없다. 문제는 어른들의 출퇴근은 필수 활동으로 간주돼 여행제한의 대상이 아닌 반면, 아이들의 등교는 왜 아닌가 하는 것이다.
워싱턴 주 북쪽의 포인트 로버츠도 사정은 같다. 이 곳은 캐나다 밴쿠버 최남단, 반도의 끝에 있다. 차를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캐나다 국경, 미국으로 가려면 캐나다를 거쳐서 가야 한다. 미국이지만 실상은 캐나다의 해변 타운과 같은 곳인데, 학교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밖에 없다.
10대 자녀들이 있는 한 가정은 아이 둘은 캐나다의 학교에, 큰 아이는 매일 국경 2곳을 지나야 하는 워싱턴 주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들 가족은 이 때문에 이산가족이 됐다. “가슴이 아프다. 세상이 잘못된 것 아니냐”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부모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캐나다와 경계가 닿아 있는 알래스카, 워싱턴, 몬태나 주 등의 정치인들은 이들 국경 마을에는 예외 조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시정책을 캐나다 당국에 요청했다 캐나다 주무 부처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캐나다도 지금 제 코가 석자다. 지난 5주새 코로나 감염자가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코비드-19 2차 파도가 밀려 들고 있다고 선언했다. 10월12일 캐나다 땡스기빙 데이에는 가능한 가족모임을 갖지 않도록 호소하고 있다. 자국민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런 마을들의 고충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튜어트 마을의 시장은 국경 건너 편 이웃들이 걱정이다. 곧 긴 겨울이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하이더로 들어가는 육상 교통은 캐나다쪽 스튜어트를 통하는 도로 외에는 없다. 아니면 수상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겨울이면 외부와 단절되는 산간마을의 고립이 더 깊어지게 됐다.
“학교 가고 싶다”는 산골 꼬맹이들의 바램이 속히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형제 국가’도 코비드-19 앞에서는 별 수가 없는 것 같다. 세상이 많이 야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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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