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팔기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뜻으로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일컫는 한자성어다. 동일한 의미로 삼전사기, 사전오기, 오전육기, 육전칠기, 팔전구기 등이 있다. 최근 ‘사전오기’ 정신으로 네 번 실패하고 다섯번 도전 끝에 선천적 복수국적 관련 미주 한인의 헌법소원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을 이끌어 낸 전종준 변호사의 뚝심(본보 9월25·29일자 보도)이 여러 한인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전종준 변호사(워싱턴 로펌 대표)는 2013년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이후 7년간 사비를 들여 헌법소원을 다섯 차례나 진행했다. 앞서 1차, 2차, 3차, 4차 헌법소원이 번번이 좌절됐지만, 전 변호사는 더이상 억울한 미주 한인들의 사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했다. 전 변호사가 ‘사전오기’ 정신으로 도전한 끝에 제5차 헌법소원에서 마침내 역사적인 순간이 탄생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24일(한국 시간)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크리스토퍼 멀베이의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대해 재판관 7대2의 결정으로 헌법 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이 결정은 국적법 중 병역 준비역에 편입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조항(제12조 제2항 본문)이 청구인의 국적이탈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위헌임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한국 국회는 해당 법률 조항을 2022년 9월30일까지 개정해야 한다.
해당 국적법은 지난 2005년 홍준표 전 의원이 원정출산으로 인해 장래 병역기피자가 양산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으나 본연의 개정 취지와는 달리 한인 2세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재외동포들 사이에서는 악법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이번에 판시된 국적법 조항의 ‘헌법 불합치’의 의미는 미주 한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2022년 10월부터 한인 2세들은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한국 국적을 이탈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병역 의무가 해지되는 만 37세까지 한국 국적을 보유하느라 이중국적자라는 신분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던 과거의 부당함과 작별할 수 있게 됐다. 즉, 미국사회의 주요 기관인 연방정부나 주정부, 육해공군 사관학교 등에 진출하는데 불이익을 받는 일을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국 국회가 어떤 방향으로 개정법을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주 동포들은 전 변호사의 ‘사전오기’ 정신을 이어받아 국적법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한국 국회가 조속히 새로운 국적법 조항을 만들 수 있게끔 한 마음 한 뜻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차세대 한인들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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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