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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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지 않는 사람들

2020-09-17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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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오면 14일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전염을 막기 위해서지만 이 정도 고생하면 낫는다고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지난 3월 코비드-19에 걸려 지금껏 앓고 있는 사람도 있다. 몇 주, 몇 달을 계속 앓는 사람은 적지 않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이야기여서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지만 이제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케이스가 쌓였다.

상황은 미국, 유럽, 한국이 다를 바 없다. 한 코비드-19 생존자 단체 회원들이 호소하는 코로나의 증상과 후유증은 무려 98가지에 이른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밝힌 증상의 8배가 넘는다.

질환이 이처럼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실상 아직 환자지만 완치자로 분류돼 있다. 숫자 밖의 사람들인 것이다. 코비드-19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도 있는 마당에 이들은 당연히 관심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죽을 만큼 아프다고 호소해도 치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저지의 32세 여성이 증상을 처음 느낀 것은 지난 3월15일이었다. 강하게 누르는 듯한 압박감, 등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오한이 날 정도로 추웠으나 몸은 땀에 젖었다. 2주 앓으면 된다고 했었나, 증상은 그후에도 희망과 절망의 순간을 오가며 반복됐다. “마치 롤러 코스트를 타는 것 같았다. 통증은 파도처럼 밀려 왔다.”고 한다. 89일간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루 14시간, 18시간, 22시간을 잔 날도 있었다. 열이 올랐다 내렸다, 좀 나아졌다 싶으면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는 증상이 몇 달간 계속됐다.

‘부산 47’로 알려진 한국의 한 남성 확진자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지 165일째 그가 겪고 있는 후유증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공과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그는 조금만 집중해도 머리가 깨질 것 같고, 가슴통증이 밀려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방금 했던 일, 하려고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너무 흔하다고 호소한다. 심한 피로감, 머리에 안개가 낀 듯한 브레인 포그, 몸 곳곳을 옮겨다니는 통증 등은 완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후유증이다.

런던의 한 30대 여성의 투병기는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다. 읽는 사람의 몸이 다 아플 지경이다. 타이 복싱 등 격투기를 하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직장까지 왕복 12마일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건강하고 활기차던 이 여성은 ‘양치할 힘은 남겨 놓을 것’이라는 메모를 벽에 붙여 놓았다. 6개월, 24주 연속 코로나 투병을 하면서 이제 이를 닦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기력이 소진된 것이다.

그새 호흡이 막혀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으나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심장마비로 여겨질 정도의 가슴 통증과 위장과 식도에 불이 난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궤양으로 생각한 의사도 있었으나 바이러스의 짓이었다. 소변할 때 요도 통증,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 누군가의 손아귀 안에서 귀가 바스라지는 것 같은 통증, 온몸에 발진이 돋고, 누군가 칼로 배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잠을 깨기도 했다.

뉴스도 들을 수 없었다. 코로나라는 말만 들어도 불안감이 엄습하고 숨이 가빠졌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산 지 반년, 인스타그램 그림으로 그간의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비로소 바깥 세상에 알려졌다.

바이러스 후유증이 있긴 하나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별종이라고 말한다. 바이러스 감염의 경우 최악은 죽느냐 사느냐인데 이건 그게 아니다. 살기가 죽기 보다 힘들다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호소를 듣는 의사도 절망스럽다. 어떤 환자는 한 주는 극도의 피로감, 다음 주는 두통, 그 다음 주는 복부 통증을 번갈아 가며 호소한다. 몇 차례 항생제나 스테로이드 치료 등을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코비드-19를 장기간 앓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장기 운반자(long-hauler)’라고 한다. 이들이 모여 돕는 모임도 생겨났다. 코비드-19 생존자 모임(COVID-19 Survivor Corps) 창설자인 다이애나 베렌트는 10만 회원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이 병은 혈관을 통해 옮겨지는 순환계 질환이기도 해서 거의 모든 장기 시스템이 다 손상을 입고 있다”고 전한다. 후유증으로 불안이나 공황장애 증상을 느껴도 정신질환이라기 보다 바이러스로 심장이 공격당하는 바람에 심장이 1분에 100번이상 뛰는 심박급속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코로나 후유증으로 실명위기에 놓인 가운데서도 완치자의 플라즈마 기증 캠페인을 펴고 있는 그는 “이 바이러스는 미스터리다. 그러나 해답은 결국 생존자들의 몸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완치를 위해 가능한 모든 협력을 다 하려 한다”고 보스턴 지역 한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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