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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스피러시 팬데믹’ 시대

2020-09-11 (금) 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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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지구적으로 창궐하는 팬데믹 사태 속에 온갖 음모론이 들끓고 있다. 바이러스 팬데믹에 음모론까지 창궐하는 ‘컨스피러시 팬데믹’(Conspiracy Pandemic)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인류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에 음모론이 창궐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온갖 ‘음모론‘과 ‘조작된 가짜뉴스’가 과학문명이 고도화되고 모든 정보들이 공유되고 연결된 21세기 세상에 난무하고 있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자 처음 등장한 음모론은 누군가 코로나바이러스를 고의로 만들어 퍼트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인 4명 중 1명이 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모론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정치인들이었다. 톰 코튼 상원의원 등은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시 실험실에 만든 것이라고 공개적인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역 음모론도 나왔다. 바이러스가 미군들의 독감에서 파생됐다는 중국의 주장이다.

그러자 그보다 더 한 음모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걷잡을 수없이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빌 게이츠 음모론. 게이츠가 코로나19 백신으로 전 인류에게 마이크로 칩을 삽입하려 한다거나 인구를 대규모로 축소하기 위해 중국과 손잡고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는 등의 음모론이다.


문제는 농담으로 웃어넘길 법한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야후 뉴스와 유거브(YouGov) 조사에서 미국인 25%와 공화당 지지자의 44%가 이 음모론을 믿는다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팬데믹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트럼프 대통령이 음모론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본인 스스로 음모론을 믿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음모론에 기운 듯한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이 담긴 메시지를 트윗했다 수차례 삭제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코로나 사망 통계를 CDC가 조작하고 있다는 큐어넌(Qanon) 지지자의 트윗을 리트위한 장본인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자신의 행정부가 작성한 통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트럼프의 음모론 의존행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쉽지 않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음모론은 그간 수없이 등장했다 사라진 음모론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최고 권력자가 음모론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음모론에 빠져든 사람들을 박해 망상과 자기 맹신에 휩싸인 ‘광신자’ 혹은 ‘편집증자’라고 치부하고, 대다수 음모론은 비주류의 B급 하위문화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최근 팬데믹 사태 속에 등장한 음모론들은 영향력이 전 사회 영역으로 확대돼 주류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 심각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퍼뜨리는 음모론은 좀 더 사악한 측면이 있다. 음모론을 정치전략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지 않는 음모론을 정치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이 지지자 동원에 효과적이고 정적 공격에 유용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는 데 용이하기 때문에 특정 정파나 지위와 관계없이 현대 정치의 중요한 전략이자 자원이 된다”고 지적했다.

9일 현재 코로나19에 감염된 미국인 누적수치는 656만명에 달하고 바이러스로 스러져간 사망자가 19만 5,785명에 달한다. 연말까지 사망자 누계가 42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암울하고 충격적인 전망도 있다. 한국전쟁 3년간 발생한 미군 사망자가 5만4,246명, 근 20년간 계속된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이 5만8,315명이었던 것에 비추어보면 코로나 팬데믹의 재앙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7년간 지속된 2차 세계대전의 미군 사망자가 40만명 정도였으니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맞닥뜨린 세번째 세계대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기술전문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창궐하고 있는 음모론과 맞서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음모론 백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음모론을 알려주고 음모론이 거짓인 이유를 설명해 사람들이 음모론을 거부하도록 하는 방식의 백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모론 창궐의 시대에 정치인 등 권력자들과 언론이 해야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음모론 백신 접종하는 것이다.

<김상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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