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예방할 수 있다는 거리, 6피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숫자의 기원을 따져 올라가니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었다.
이 거리는 1800년대 후반 독일의 한 생물학자에 의해 처음 제시됐다. 실험결과 침방울 등 인체에서 배출되는 작은 입자인 비말에 섞인 미생물이 가장 멀리 퍼질 수 있는 거리가 이 정도로 조사됐다고 한다. 이후 6 피트, 1.8 미터라는 거리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 전통적인 지혜의 하나로 받아 들여져 왔다.
이 수치는 긴 세월을 지나 지금은 수퍼마켓 계산대 앞이나 은행의 대기 줄 등 미국의 생활공간 곳곳에 정착했다. 팬데믹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에티켓 같은 간격이 된 것이다. 이 거리는 믿을만한 것인가.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 초기, 영국에서는 식당이나 술집 손님간의 거리를 2미터로 정했다. 식당과 바 주인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장사에 지장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코비드-19에 걸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보리스 존슨 영국총리는 이 거리를 ‘1미터 이상’으로 조정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고무줄같은 거리라는 것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180년 전통의 영국 의학 전문저널인 BMJ에 게재된 한 논문은 이 거리를 “구 시대 과학과 (코로나가 아닌) 다른 바이러스의 전파 상황을 조사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감염병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지난 8월말 발표된 이 논문에서 “바이러스의 전파 거리는 공기의 흐름, 통풍, 노출 시간, 군중의 밀집도, 마스크 착용여부 등에 따라 다르다. 또한 침묵하고 있느냐, 대화 중이냐, 고함을 지르느냐, 노래를 부르느냐에 따라서도 다 다르다”고 밝혔다.
주위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6피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19세기에 측정된 이 거리는 특히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비말보다 더 작은 입자인 연무질, 에어로졸 전파는 염두에 두지 않고 설정됐다. 에어로졸 전파는 국제보건기구와 미국의 공중 보건당국에 의해 얼마 전 그 가능성이 인정된 감염 경로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2가지 실험은 6 피트는 안심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힘을 더한다. 네브라스카 대학 메디칼센터는 코비드-19 환자가 입원한 병동의 복도 등에서 다량의 코로나바이러스를 포집했다. 어느 정도 양의 바이러스가 코비드-19를 일으킬 수 있느냐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면 전파에 충분한 양이라고 한다. 플로리다의 한 병원에서는 코비드-19 환자로부터 16 피트 떨어진 공간에서도 바이러스가 잡혔다.
에어로졸 감염에서 6 피트는 큰 의미가 없다. 워싱턴 주에서는 50여 명이 한 방에 모여 합창연습을 했을 때 감염자로부터 45피트 떨어진 곳에 앉은 사람도 감염됐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가동된다면 건물 내 다른 공간도 감염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홍역, 결핵, 치킨팍스, 독감 등의 바이러스는 통풍기, 히터, 에어컨 시스템에 의해서도 전파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감염자들은 증상과 무증상이냐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바이러스를 공기 중에 내보내고 있다. 비감염자들은 호흡을 통해 이를 받아 들이고 있고-. 6 피트는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전파를 막기 위한 최소 거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6피트라는 거리도 보건기구나 나라 마다 달라 예컨대 세계보건기구는 최소 1미터나 3피트, 유럽 일부 국가는 1.5미터, 또 어떤 나라는 2미터 간격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절대 안전거리란 없다는 말과도 같다.
전파 우려는 이같은 거리 보다 실내냐 야외냐 하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실외일 경우 감염 우려가 훨씬 줄어든다. 공기의 흐름이 바이러스를 분산시키고, 그 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미국 대도시에서 잇달아 발생했을 때 대량 감염 우려가 한껏 고조됐었다. 하지만 시위는 핫 스팟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바이러스 전파 방지에는 6피트라는 거리 보다 바깥이라는 환경의 힘이 더 셌던 것이다.
“적정 거리두기와 꼭 맞는 마스크 착용, 그리고 야외라는 환경이 지금으로서는 코로나 전파를 막는 가장 완전에 가까운 방법”이라고 한 감염병 전문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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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