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일깨워준 ‘과잉 진료’
2020-09-03 (목)
미국 의료시스템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로 지적돼 온 것은 병원 및 클리닉의 ‘과잉 진료’와 환자들의 ‘과잉 의사방문’이다. 의료시스템이 수익을 위해 환자를 양산해내고 과다하게 치료와 투약을 함으로써 환자의 건강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의학계에서는 이 현상의 병폐와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몇 년 전 ‘당신의 의사가 당신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라’(don‘t let your doctor kill you)는 다소 살벌한 제목의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여의사 에리카 슈워츠의 주장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녀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과잉처방과 과잉검사 등 ‘모든 것이 과잉’(over everything)인 상태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이 모든 ‘과잉’은 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의 권위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하고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을’의 입장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증유의 팬데믹은 우리에게 큰 고통과 불안을 안겨주면서 삶의 방식에 상상치 못했던 변화를 안겨주고 있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이런 변화들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깨우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팬데믹이 지속된 지난 수개월 동안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이나 의사를 찾지 못했음에도 이들의 건강상태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는 오랫동안 진료를 받지 못했음에도 건강상태가 전혀 나빠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치료의 지연으로 건강이 나빠졌다고 응답한 사람은 10%였다. 대다수 환자들은 의사나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건강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심장병 전문의로 미국 의료시스템의 과잉 진료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온 샌디프 자우하 박사는 이 같은 현상은 평소 얼마나 많은 ‘낭비적 진료’가 시행돼 왔는지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 지적한다. 미국인들에게 현재 의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의료 서비스 전부가 필요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의 소송이 두려워 실시하는 ‘방어적’ 치료와 진단의 명확성을 명분으로 한 과잉 검사들, 그리고 더 비싼 테크놀러지가 더 좋다는 광범위한 믿음 등이 결합하면서 과잉 진료와 수십억 달러의 의료비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우하 박사의 이런 지적에 많은 의사들도 공감하고 있다. 수년 전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응답 의사의 3분의 2는 미국에서 실시되는 의료 치료의 15% 내지 30%는 불필요한 것일지 모른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의료진들이 가장 쓸데없는 것으로 꼽는 진료행위는 허리 MRI 스캔, 심장병 징후가 없는데도 실시하는 방사선 스트레스 테스트 등이다. 한 연구에서는 수술 가운데 20%는 사실상 필요 없는 것들이라는 게 밝혀졌다.
병원과 의사들 뿐 아니라 환자들도 문제다. 환자들이 사소한 질환에도 병원을 찾음으로써 항생제 처방 남용과 이로 인한 부작용 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애티브 메로트라 하버드 의대교수는 “감기와 축농증, 기관지염 등을 치료하겠다며 의사를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이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증상들로, 의사를 찾는 것은 돈과 시간의 낭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팬데믹을 계기로 의료계도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들과 불필요한 치료를 좀 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자우하 박사는 강조한다. 박사의 지적이 아니더라고 미국 의료계가 과잉과 낭비의 바탕위에 많은 돈을 벌어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제 그것을 시정하기 시작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각성 또한 중요하다. 팬데믹 때문에 미룬 비 긴급 수술이 있다면 그 수술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의사에게 용기 있게 물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