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6년 1월, 뉴저지의 눈 덮인 산길에서 동계 훈련 중이던 한 병사가 쓰러졌다. 그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신종 플루를 앓고 있었다. 이 부대가 주둔한 군 기지에는 230여명의 군인이 같은 독감에 걸려있었다. 행군 중에 쓰러진 19살 난 병사는 숨졌다. 미국의 공중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서둘러 백신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백신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접종자 중에서 500여명의 사지가 마비됐다. 25명은 목숨을 잃었다. 백신의 부작용으로 신경세포가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 케이스는 잘못 만든 백신은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 일은 미국인들의 백신 거부 반응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가 최초로 코비드-19 백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서방세계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러시아산 백신이 완전한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시됐던 백신이 추후 부작용 때문에 회수되는 일은 그새 여러 번 있어왔다.
지금 지구촌 최대의 관심사는 안전하고 유효한 코로나 백신이 언제 개발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개발중인 백신은 200여종. 이중 170여종은 아직 동물이나 연구실 실험 단계로 알려졌다.
개발된 백신이 실용화되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3차례 임상실험에서 안전성과 효과, 부작용 유무가 확인돼야 한다. 현재 젊고 건강한 소수를 대상으로 한 1단계 실험에 들어간 백신이 7종, 고위험군이 포함된 더 넓은 범위의 2단계 실험에 11종, 마지막으로 수만 명을 대상으로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최종 점검하는 3단계로 넘어간 것이 7종으로 파악되고 있다.
백신의 승인 여부는 연방 식품의약청(FDA) 소관이다. 그중에서도 FDA내 ‘생물약품 평가와 연구센터(CBER)’가 담당한다. 1,200여명이 일하고 있는 CBER의 책임자는 피터 막스 국장. 백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막스 국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스티븐 한 FDA 청장의 말대로 그는 “백신의 스트라익과 볼 여부를 판정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뉴욕 브룩클린 출신으로 올해 57살인 막스 국장은 뉴욕대학 의대와 대학원에서 의사과정과 세포와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뉴욕 토박이 의사이자 과학자이다. 졸업 후 병원, 제약사, 예일 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8년 전 FDA에 합류했다.
그는 일벌레로 알려져있다. 선배와 동료들은 “그는 늘 일한다, 늘-”이라고 전한다.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지혈방법을 물어도 설명하는 사람이 그라고 한다. 업무처리 방식은 시위를 떠난 활처럼 곧장 목표물로 향해 접근하는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그는 앞으로 몇 달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한다. 그의 결정은 보건뿐 아니라, 경제와 정치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 일부 언론은 그의 직책을 두고 ‘지금 미국 정부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라고 전한다. 미국은 미처 개발되지도 않은 백신의 구매 계약을 잇달아 체결할 정도로 다급하다. 대통령은 재선 여부가 백신 개발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공중보건 책임자로서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을 이겨내야 한다. 백신의 승인 과정에서 제기될 기술적인 결함과 과학적 판단의 실수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어느 것도 현 시점에서는 치명적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백신 승인과 관련한 정치적인 압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임 FDA 청장을 포함해 그를 아는 동료 과학자들의 신뢰는 굳다. “정치적인 게임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다. 정치적 압력을 받는다면 공론화시키거나 사퇴할 것이다. 그는 결코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익명의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실무 책임자인 그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그의 상급자들에게 있다. FDA 또한 코비드-19 치료약으로 말라리아 약을 긴급 허가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혼선을 자초하기도 했다.
백신 개발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미국서 연 300만 건 이상이 발병한다는 성병의 일종인 유두종 바이러스(HPV)는 15년, 치킨 팍스는 34년이 걸렸다. 홍역은 9년, 소아마비 7년, 볼거리로 알려진 유행성 이하선염도 개발에 착수한 지 4년만에 안전한 백신을 얻었다. 이에 비하면 빠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목표인 코비드-19 백신은 말 그대로 초고속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막스 국장은 지난 6월 코로나 백신 개발자들에게 승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공중 보건당국으로는 이례적인 조처로 주목받았다. “어떤 제품이든 안전이 입증되고, 예방과 증상 완화에 플라시보(가짜 약)를 투약했을 때보다 50% 이상 효과가 있다면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 승인의 문턱을 대폭 낮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코비드-19를 뿌리 뽑으려면 백신의 효과가 70% 가까이 되고, 국민의 70%가 접종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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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