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의 오만과 탐욕
2020-08-14 (금)
하은선 편집위원
‘코닥 모멘트’ 추종파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필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안된다고 코닥 주식을 매수해서 온갖 비아냥을 들었던 영화광이었다. 코닥 모멘트가 셀피 타임으로 바뀐 세상인데도 ‘필름 영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며 1달러도 채되지 않던 코닥 주식을 끝까지 붙들고 있던 친구가 드디어 매도를 했단다. 주가가 1481% 폭등했을 때 몽땅 털어버려서 손해 보진 않았지만 섭섭하기 그지없다고 푸념을 했다. 바이오주니까 좀더 갖고 있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코닥 필름’ 주식이 좋아서 매수했지 ‘코닥 파마수티컬즈’는 필요없다고 혀를 찼다.
카메라 기업으로 유명한 코닥이 제약 바이어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한 이후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코닥은 ‘바이오주’ 수식이 붙으며 주가가 날았는데 이는 미국 정부가 7억6,500만 달러를 대출하며 달아준 날개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닥이 의약 성분을 제조하도록 돕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의 33번째로 이용될 것이라며 “코닥 제약을 계기로 의약품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찾아 올 것이라고 밝혔다. 코닥의 향후 계획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원료 생산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있다고 극찬한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포함돼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이오주의 주가가 폭등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긴 하다. 그래도 코닥만큼 요동을 치는 주가는 드물다. 코닥이라는 필름 제조사가 보유한 원천적 기술이 의약품 제조사로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주긴 한다. 코닥과 경쟁하던 후지필름이 일찌감치 헬스케어 및 의약품 사업에 뛰어들어 환골탈태했다. 필름 제조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정밀하게 다루는 기술과 설비가 필요한 산업이고 코닥은 후지필름보다 기술과 설비면에서는 훨씬 앞서 있었으니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 의약품을 만드는데 매진하면 미국 정부가 인도나 중국의 제조기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 파산을 막느라 쪼개어 팔아버린 수많은 특허가 의약품 제조에 필요하진 않는지, 필름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코닥만 몰라서 망했던 과거와의 절연에 성공했는지, 생산라인 전환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질지 의문점이 많지만 전 세계의 경제 활동이 정지된 코로나 시대 파괴적인 혁신은 주시해볼 만하다.
1888년 뉴욕에서 창립된 이스트만 코닥은 미국의 역사적인 이미지 솔루션 관련 기업이다. 130년을 카메라 및 필름 제조사로 ‘필름 왕국’이라는 명성을 자랑하던 코닥은 과거에 집착해 미래 트렌드를 읽지 못해 몰락해 경영수업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과거 필름시장에서의 성공에 취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위기를 맞은 오만한 공룡기업의 실패 사례다.
코닥의 가장 큰 실수는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도 이를 상용화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고 트렌드 파악도 했지만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 나서지 않았다. 기존 시장인 아날로그 필름시장을 지키겠다며 성공한 거대기업이 빠지기 쉬운 ‘오만함’에 취해있었다. 신생기업들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점령한 뒤인 1990년대 코닥은 8년간 10억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필름카메라 기술인 ‘어드밴틱스’를 개발했지만 처참히 무너졌다. 변화의 시기를 놓쳐버린 댓가였다. 당시 코닥은 경쟁자들에 대해 안일한 대응을 하는 바람에 아예 카메라 라인을 없애버려야 했다. 보유하고 있던 특허를 매각해 회사를 살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추억의 코닥사진, ‘코닥 모멘트’와 이별을 해야 했고 2013년 구조조정을 거쳐 파산 위기에서 겨우 벗어났다. 그 이후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다가 코로나를 겪으며 ‘코닥 제약’으로 단기간에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
인류가 겪은 전염병 대유행 가운데 최악의 재앙이라는 코로나19 이후 실리콘밸리 투자자인 리드 호프먼은 기업이 성장하려면 ‘블리츠스케일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기업가 크리스 예와 함께 펴낸 경영전략서에 소개된 ‘블리츠스케일링’은 기습공격을 의미하는 ‘블리츠리스크’와 규모 확장을 뜻하는 ‘스케일업’의 합성어다. 퇴각로는 버리고 속도전으로 움직이는 기업의 고도성장 전략이다. 이 시대는 맹렬한 속도로 사업을 키워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해서 신중하고 느리게 접근하다가는 따르는 위험과 비용이 더 크다는 이유다. 코닥의 블리츠스케일링은 과연 성공할까. 호기롭게 단기간 변신을 시도하긴 했는데 2달러에서 한때 60달러까지 치솟았던 코닥 주가가 결국 임원들의 ‘탐욕’이 빚은 내부자 거래 혐의를 받고 있다. 아날로그의 추억인 코닥 모멘트는 이제 오만에서 탐욕까지 소장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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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