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매주 화요일자 교육섹션에 ‘건국의 아버지들’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뉴저지와 워싱턴 지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이종권 씨가 한글로 번역한 역사서 ‘The Book of the Founding Fathers’에 수록된 미국의 정신과 미국 건국에 가장 의미 있게 공헌한 인물,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키웠던 용기 있는 지도자, 세계 최초의 연방 민주주의로 실현해 낸 사람들 35인을 조명한다.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등 미국에 사는 우리가 필수 교양으로 꼭 알아두면 좋을 인물들이 매주 1명씩 소개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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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의 사무엘 애덤스
◆사무엘 애덤스(Samuel Adams) 약력
△1722년 9월 27일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출생 △1740년 하버드대 졸업 △1756년 보스턴 세금징수원
△1765년 매사추세츠 의회 대의원 △1766-74년 매사추세츠 의회 서기관 △1772년 매사추세츠 통신위원회 창립자
△1773년 보스턴 티파티 조직 △1774-81년 대륙의회 대의원 △1781-88년 매사추세츠 상원의장
△1789-93년 매사추세츠 부주지사 △1794-9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1803년 10월 2일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영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치 활동가이자 애국파로서, 사무엘 애덤스는 아메리카 혁명의 탁월한 설계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존 애덤스의 사촌인 이 사람은 괄목할만한 저돌성으로 자신의 이익은 거의 돌보지 않고 독립의 대의에 헌신했다. 여러 기사와 연설에서 그는 영국의 폭정을 비난했으며 그의 애국파 동지들을 보스턴 ‘학살’이나 보스턴 티파티 사건 같은 정치투쟁으로 이끌었다. 영국이 식민지에서 세금징수권이 있는지에 대하여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반란 지도자를 자임했다. 실제로 그는 1775년 영국군이 렉싱턴에 주둔한 이후 존 행콕과 함께 추적을 당했던 인물이다.
1765년 애덤스는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인지세법 거부를 독려했고,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인지세법 회의를 통한 모든 식민지들 간의 회합을 배후에서 기획했던 주동자였다.
애덤스는 매사추세츠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서기관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으며, 또한 비공개적으로는 매사추세츠 통신위원회(Committee of Correspondence)의 창립자로서, 그리고 자유의 아들들(The Sons of Liberty)이라는 지하조직의 지도자로 맹활약하며 영국에 저항했다. 이 과격한 애국파 그룹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폭력과 시위를 주도했다. 총독의 사저를 급습하기도 했고 영국인 세금징수원의 인형을 만들어 목매달기도 했다.
1770년 3월 5일 일군의 식민지인들이 보스턴에서 영국군을 위협하다가 세 명의 식민지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애덤스와 조셉 워렌은 이 사건을 보스턴 ‘학살’이라고 명명했고, 이 ‘학살’ 소식은 반영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애덤스는 1773년 12월 또 다른 사건을 주동했다. 애덤스가 이끌었던 자유의 아들들이 영국 선박에 올라타 선적되어 있던 수백 상자의 차를 바다에 투척했다. 차세에 대한 저항이었다. 애덤스는 정치적 쟁점에 불을 붙이는 선동의 귀재였다.
애덤스는 1774년 1차 대륙회의에 참석했고, 1775년 4월 18일 행콕과 함께 2차 대륙회의에 참석하려고 렉싱턴에 머물고 있을 때 영국군이 그 둘을 추격하고 있다는 폴 리비어의 전갈을 받았다. 그들은 영국군이 도착하기 전 도망쳤고, 바로 그날 최초의 총성이 울렸다.
샘 애덤스는 1781년까지 대륙회의에서 활약했고, 전쟁 후 정부의 고위직을 맡기도 했지만 그의 정열은 독립 그 자체에 있었으므로 그것이 쟁취된 것으로써 그의 목표는 완수된 것이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후 그는 이것이 “1775년 4월 19일 직후에 이루어졌어야만 했다”고 썼다.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샘 애덤스는 늘 갈급했다. 그러나 그는 아메리카의 독립이 그의 생전에 실현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건을 연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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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이종권 씨는
서울 상문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동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캔사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로 번역가다. 외국어대학교와 경인여대에서 영어 강사를 역임했으며 캔사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 ‘뉴욕불교’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뉴저지에서 출판사인 프론티어 퍼블리케이션스를 비롯 보림식품, 뉴욕산삼컴패니 등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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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권 / 번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