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켓에는 늘 손님이 많다. 주중 오전이라고 그리 한가하지도 않다. 코스코에서 한인 마켓까지 공통된 현상이다. 장 보는 사람은 남자가 확실히 늘었다. 요즘 같은 때 장보기도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에 남편과 아빠들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마켓 가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일까. 여기에 관한 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뤄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최근 텍사스 의학협회가 내놓은 한 자료가 눈길을 끈다.
의사들로 구성된 이 협회의 코비드-19 전담팀은 37개의 일상생활을 나눠 코로나 감염 위험도를 평가했다. 실내 음악회 참석과 술집 출입 등을 위험도 9점, 최상위에 올리고, 결혼식이나 장례식, 미장원 이발소 방문은 7점을 매겼다. 우편물 개봉은 위험도가 가장 낮은 1점, 식당음식 테이크아웃과 자동차 주유는 2점, 그로서리 쇼핑은 골프 등과 함께 3점으로 평가됐다.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켓 가는 것도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할 일상으로 분류한 것이다. 장보기는 특히 노인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다. 노령층 기저질환자가 코비드-19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은 알려진 일이다. 노인치고 당뇨 등 한두 가지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신 장을 봐줄 자식들이라도 가까이 없다면 직접 장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켓 가는 회수를 줄이려고 한번에 쇼핑하는 양은 늘었다.
이런 노인들의 그로서리 쇼핑을 대신 해드리면 어떨까. 10대 청소년들이 나섰다. ‘노인들을 돕는 10대들(Teens Helping Seniors)’이 그 주인공들이다. 시작한 지 넉달여 만에 전국적으로 장보기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이 600명을 넘었다.
지난 3월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15, 16세 고교생 2명이 처음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지역을 덮치자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장을 대신 봐드리던 두 친구는 문득 자기들 같은 손자나 식구들이 없는 노인들은 어떻게 할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코비드-19는 양로원 등 특히 노인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들끼리 연락해 네트웍을 만들었다. 마침 학교도 문을 닫아 친구들 모두 시간이 많았다. 페이스북과 이웃을 연결하는 소셜네트웍인 넥스트도어(Nextdoor)를 통해 노인들의 그로서리 쇼핑을 도와드릴 수 있다고 알렸다. 도움 요청이 답지했다. 시작한 지 2주 만에 이 동네를 넘어 뉴욕의 알바니에 지부가 생길 정도로 수요가 많았고, 참여하는 고교생도 늘었다.
쇼핑이 필요한 노인들이 주소와 배달시간이 적힌 이메일을 보내오면 형편이 닿는 자원봉사 고교생들과 연결시켜 드렸다. 쇼핑 목록은 이메일로 보낸다. 필요하면 마켓 안에서 학생들이 전화를 했다. “그릭 요거트라고 하셨는데 어떤 맛을 원하시죠?” “시리얼은 라이트 브라운슈거에 계피향이 나는 걸 사면 될까요?”. 배달은 현관 앞까지 했다. 위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항상 마스크와 글로브를 하고, 마켓봉지에 손이 닿는 부분은 일일이 세정제로 닦았다. 돈은 체크로 끊어 문 앞에 놓아두거나 벤모로 송금 받았다. 딜러버리 팁은 일체 없다.
차가 없으면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가족들이 카풀로 도와주기도 한다. 이 일을 시작한 두 고교생도 운전면허가 없다. 한 사람이 일주에 2번 정도 쇼핑 봉사를 했으나 많을 때는 주 4~5번이 될 때도 있었다.
처방약을 배달하는 경우도 생기고, 쇼핑을 부탁한 85세 할머니가 마침 생신이라는 걸 알게 된 한 고교생은 집에서 생일 케익을 구워 선물로 전해 드리기도 했다. 마켓 자원봉사를 하면서 늘 식구들을 위해 장을 보는 어머니의 노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는 10대도 있다. 지역의 한 마스크 메이커에서는 배달 때 사용할 마스크를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중순 이들의 이야기는 CNN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피플지와 이 지역 신문이기도 한 워싱턴포스트지도 이들의 스토리를 전했다. 활동지역은 처음 워싱턴 DC 일대 등 동부지역에 한정됐으나 지금은 캐나다 몬트리올과 캘리포니아 등 서부 쪽으로도 확장됐다. 현재 결성된 챕터는 모두 27개. 남가주에는 LA, 오렌지카운티, 샌디에고에 지부가 있다. 오렌지카운티는 남부와 북부 2곳으로 따로 나뉘어 있을 정도로 10대들의 자원봉사가 활발하다. 요즘은 일부 대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다.
자원봉사가 처음 시작된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는 한인 주민도 적지 않은 곳이어서 처음부터 한인 고교생들도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코비드-19 시대의 어려움을 함께 넘고 있는 10대 자녀들에게 한 번 권해볼 만한 의미있는 일로 생각된다.
특히 한인 노인들은 언어 장벽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남가주처럼 한인들이 밀집된 곳에서는 한국어로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한국어 이중언어 서비스 챕터를 시도해보는 것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TeensHelpingSeniors.org를 참조하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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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