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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신의 놀라운 탄력성

2020-08-05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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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의 정신건강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그 어떤 기준으로도 과소평가될 수 없다. 특히 악화된 경제적 상황과 불확실성이 안겨주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면 자살률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오고 있다. 재난 기간에는 극단적 선택을 할 여력이 없지만 긴급한 상황이 지나가고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자살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악의 재난상황이라 할 수 있는 전쟁 중에는 자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 같은 잿빛 포스트코로나 전망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부정적 경험과 고통이 분명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집단적 재난상황은 더욱 그렇다. 잘 대응하면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자살급증 우려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강하고 탄력적인지 다양한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심리학자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거나 폭력적 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것 같은 비극적 경험들이 피해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고 가정해왔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점차 뒤집히고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하지 않으며, 트라우마를 경험하고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는 탄력적인 존재임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삶을 위협하는 사건이나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은 스스로 이를 잘 극복해내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수년 전 한 의학저널에 만성통증과 관련한 연구 결과가 실린 적이 있다. 2,000명의 만성통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배우자를 잃는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통증을 더 잘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생활의 만족감이 통증을 완화시켜줄 것이라는 연구진의 당초 가정은 무너졌다. 연구진은 “삶속에서 가장 큰 상실을 맛본다는 것은 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더 강해지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인간은 정말 신묘한 존재다. 곧 무너지고 죽을 것만 같은 슬픔을 겪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다. 자식이나 배우자를 잃고 내장이 끊길 듯 극심한 고통에 괴로워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다.

부정적인 환경이나 사건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은 아니다. 장애나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만족감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상해보라고 하면 대단히 낮게 나온다. 그러나 장애나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 만족감은 이보다 훨씬 높다.

“무슨 노래 가사에나 나올법한 미심쩍은 이야기로 들릴지 몰라도, 분명한 사실은 불행한 일을 경험한 후에도 사람들은 꽤 잘 살아간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행복 연구의 권위자 대니얼 길버트의 말처럼 우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잘 이겨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를 통해 성장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탄력성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이 회복력 때문에 우리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비극과 고통을 넘어서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팬데믹 시기에 더욱 와닿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자체가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가장 절망적인 감정조차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옅어진다. 그러니 잘 견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모두가 이전보다 한층 더 단단해져있기를 소원한다. 그렇게 된다면 위기를 지나면서 겪고 있는 지금의 혼란과 불안이 결코 의미 없는 경험만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나마 자각하게 될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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