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살 허가제

2020-08-01 (토)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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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명석한 인간이 행한 행위를 말한다.” <아킬 델마 1932>

자살을 정신병리학적 문제로 본 것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를 죽이지 않는다’ 라는 명제하에 자살자들을 심신 장애자로 보는 것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나 그 후 사회적 사건과 관련된 현상으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 때문에 자살한 경우도 심리적 충격의 원인이 뇌신경계에 장애를 일으켜 자살에 이르게 되니까 거의 모든 자살은 이제 정신과 영역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정신병사’ 또는 ‘정신 상처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하루에 37.5명(2018통계) 자살하는 한국! 시장 쯤 되지 않으면 별 관심도 받지 못한다. 얼마나 기막힌 현실인가.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자살 방법은 83가지고, 자살 동기는 989가지라는 보고도 있다. 내 경험으로 자살 동기는 정신질환과 안락사를 제외하면 크게 억울한 일을 당했던지, 경제적 어려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문제들의 해결방법은 억울한 사람은 법으로 억울함을 풀어주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죄값을 치르고 재활시켜서 용서받게 해주고 다시 화해하는 사회를 만들면 될 것이고, 사업이 망해 자살하는 사람에게 의료보험에서 자살방지 약으로 사업에 실패한 금액을 물어준다면 이 심각한 자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은 되지만 현실성은 없다.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정신병은 우울증, 정신착란증, 조울증, PTSD, 각종 폭행, 왕따, 경제적 어려움, 신체적 장애, 약물중독 등으로 자살에 이르게 된다. 우울증에서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켜 정신착란 상태가 되어 갑자기 자살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서울 시장처럼 멀쩡한 사람이 하루 사이에 갑자기 자살을 한다는 경우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굳이 상상하려면 무엇인가의 심리적인 독침을 맞은 것이 아닌지?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극도의 경쟁 속에서 이제 피로 사회를 지나 ‘지친 사회’ 또는 원한, 분노가 가득한 사회, 많은 원수를 갚아야 할 사회인가! 각자의 다른 방식의 사랑의 표현은 서로에게 가시가 되고 상처가 되는 세상! 한국의 정치, 경제구조는 개인의 건전한 정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상태인가! 유명 정치인, 연예인 자살 사건을 보면서 어쩐지 ‘한국인의 나르시시즘’과 연관이 있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로마시대에는 스토아학파의 영향으로 자살자가 너무 많아 국가적으로 ‘자살 허가제’를 실시하여 정부가 자살 사유를 심사하고 타당한 경우에는 햄록(hemlock-소크라테스 독살에 사용된 독약)을 처방하여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어떻게 보면 안락사의 원조인 것이다. 하루 40여명의 자살자! 우리도 이제 로마시대의 자살허가제를 법적으로 제정하자고 주장해야할지 기막힌 현실이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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