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주는 졸업식과 입학식 그리고 생일파티와 결혼식들. ‘메모리스’(Memories)란 제목의 짧은 광고화면은 지난 4개월간 미국인들이 놓쳐버렸을 삶의 순간들에 초첨을 맞춘다.
그리고 여성 해설자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것들이 바로 코로나19가 우리에게서 앗아가버린 기억들입니다. 이 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들”이라고 말한 이 해설자는 “우리는 정말 불필요한 고통을 겪고 있다. 트럼프 때문이다. 트럼프가 바보, 거짓말쟁이, 실패자이기 때문이다(Trump is a fool, a liar and a failure.)”라며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트럼프의 책임을 묻는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를 저지했지만 트럼프는 그러지 못했다”고 말한 그녀는 “이것은 트럼프의 바이러스(Trump’s virus)다”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을 맺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쿵 플루’라거나 ‘중국 바이러스’라며 중국의 책임을 따졌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아니 이것은 당신 ‘트럼프 바이러스’야”라고 통박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 사태 속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며 ‘코로나19 대응을 혹시 포기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책임한 언행으로 일관하며 코로나19 확산에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을 신랄하고 직설적으로 비판한 정치광고 영상이다.
내용과 메시지가 영락없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캠프나 민주당이 내놓았을 것 같은 이 광고 영상은 사실 공화당의 반트럼프 성향 인사들이 조직한 ‘링컨 프로젝트’가 지난 28일 공개한 반트럼프 캠페인 광고 영상이다. 공화당 소속 선거전략가들은 지난해 ‘링컨 프로젝트’라는 반트럼프 수퍼팩(정치활동위원회)을 조직해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위해 머리를 쥐어짰을 공화당 최고의 선거전략가들이 조직한 ‘링컨 프로젝트’ 수퍼팩은 목표는 단 하나.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낙선시키는 것이다.
더군다나 ‘링컨 프로젝트’에는 켈리앤 콘웨이 현 백악관 선임고문의 남편인 조지 콘웨이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콘웨이 변호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 초대 법무차관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핵심 친트럼프 인사였다. 그런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수호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부인과 정반대편에서 서서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리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 콘웨이 부부의 모습은 미국 보수와 공화당이 현재 처해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내부 균열은 갈수록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결단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 수 없다”고 공언하는 등 부시 행정부 시절 내각에 몸담았던 장관급 인사들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바이든 당선을 위한 ‘바이든을 위한 43기 동문’이라는 수퍼팩을 구성해 바이든 당선 활동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 백악관 공보국장에 임명됐다가 권력 암투로 임명 11일 만에 낙마한 앤서니 스카라무치도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진영도 반 트럼프 전선에 가담했고, 레이건 재단은 트럼프 캠프에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사용하지 말라고 정색해, 사실상 반트럼프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3명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 진영과 후원세력들이 현직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낙선을 위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는 11월 3일 대통령 선거가 채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나타나고 있는 유례 없는 공화당의 분열상은 공화당과 미국 보수주의가 맞닥뜨린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공화당 핵심 인사들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초유의 공화당 분열 사태가 미국 보수주의의 몰락을 알리는 징후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트럼프와 현 공화당 주도세력이 미국 전통의 보수주의와 보수 본산 공화당의 소멸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낙선하면 공화당과 미국 보수세력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몰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공화당과 미국 보수에게는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치열한 내부 투쟁으로 공화당과 보수세력 내부의 극단주의를 몰아내고 보수의 가치를 회복하고, 유연하고 포용적인 보수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공화당과 미국 보수가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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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