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후안 콜 교수가 최근 비영리 독립미디어 매체인 ‘커먼 드림스’에 기고한 글이 눈길을 끈다. 콜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우리 세대의 진주만 공격’이라고 언급한 제롬 애덤스 공중보건의의 비유를 인용하면서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응하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과학과 지성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콜 교수는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나라로 독일과 한국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 두 나라는 과학과 지성에 대해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사례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두 나라 국민들의 인식조사 결과를 들었다. 과학을 신뢰하는 독일인들은 81%가 지구온난화를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는 이보다도 높아 국민들의 91%가 지구온난화를 ’심각한 혹은 아주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콜 교수는 소개했다.
콜 교수의 분석을 적용해 본다면 코로나19 대응에 집단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대표적 나라인 미국이 선진국들 가운데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 정서가 가장 강한 나라라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미국인들의 과학계에 대한 신뢰는 그리 깊지 않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기후과학자들의 설명과 정보를 아주 신뢰한다고 밝힌 미국인은 39%에 지나지 않는다. 골수 공화당원들 가운데는 그 비율이 15%에 불과하다. 이런 시대착오적 인식을 가진 인물들이 대통령과 연방의원, 그리고 주지사 같은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요직들을 많이 꿰차고 있으니 팬데믹이 잡히기는커녕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트럼프가 지금까지 어떤 태도로 일관해 왔는지는 새삼 언급할 것도 없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7만을 웃도는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잘해왔다고 주장하면서 백악관 대응에 쓴 소리를 하는 전문가들을 공격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과학과 지성에 대해 합리적 믿음과 판단을 가진 인물이었다면 상황은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는 흔히 교육수준과 과학적 인식이 비례할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하지만 공화당원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교육수준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견해는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지구온난화를 과학이 아닌 이념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명색이 명문 소리를 듣는 와튼 스쿨을 졸업했다는 대통령이(조카는 트럼프가 SAT 대리시험으로 입학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거짓주장”이라고 억지소릴 하면서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했을 때 이미 팬데믹과 같은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고가 균형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특정 사안들이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어처구니없는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연방의회에 출마한 주요정당 후보들을 분석했던 논픽션 작가 션 로렌스 오토는 “진화, 그리고 인간이 초래한 온난화와 백신 등을 믿지 않는 후보들이 과거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반과학적 믿음들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토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한가한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이런 위험한 반과학적 믿음들은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국민들의 사지로 내몰고 있다.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 함정에 빠져있는 지도자와 권력자들의 위험과 해악은 일반 국민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른바 ‘똑똑한 바보들’이라 불리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출세하거나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국민들의 안위를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정치적 권력까지 쥐는 일만은 막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올바른 집단지성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바로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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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