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이나 분노를 폭발시킴으로 다른 이들에게 감정적 공격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를 내지 않고 말로 표현은 안 하지만 ‘꿍’하게 삐진 모습으로 ‘나 화났어’를 은근히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화났어?’라고 물어보면 ‘아니. 괜찮아’라고 감정을 부인하지만 대화는 단절이다. 이렇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방법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공격하는 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수동 공격형 (passive-aggressive)’이라 한다.
2차 대전 후 군대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방법(예: 비효율적인 업무, 미루거나 잊어버리기, 냉소적 반응 등)으로 불만을 표출하거나 반항하던 군인을 일컫던 용어가 이제는 미국사회에서 널리 쓰인다. 한인들에게 ‘수동 공격’이란 단어는 낯설지만, 문화적으로 자신의 감정 표현을 격려받지 못하고, ‘갑-을’ 관계의 사회에서 의사 표현이 제한적인 한국 직장과 가정 내에서 수동 공격적 행동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속내를 숨긴 교묘한 수동적 공격은 어떤 모습일까?
이들은 의무나 책임, 권위 등에 불만이 있어도 말하거나 절차를 통해 표현하기보다는 업무를 태만히 한다든지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잊어버리는 등 소극적인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앞에서는 칭찬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냉소적이고 가시돋힌 농담으로 망신을 준다거나 못 들은 척 못 본척하는 방식으로 복수하기도 한다. 당하는 상대가 불쾌한 감정이 쌓여 결국 화를 내면 ‘내가 뭘? 분노장애가 있나봐’라고 발뺌해서 화를 낸 사람이 골탕을 먹곤 한다.
직장 동료나 가족 중에 수동공격형이 있으면, 순하고 얌전하게 보여서 자칫하면 혼자 원통하고 분한 속앓이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항상 작정된 의도를 가지고 수동 공격적 행동을 하는건 아니다. 많은 수동 공격형은 스스로가 ‘상냥하고 착하다’고 여기고 불만을 잘 참는다고 믿는다. 이들은 불편한 감정이나 불만이 있어도 표현하는데 서툴다보니 속으로 참으면서 ‘말 안해도 알아주길’ 바라는 숨겨진 의도를 품고 있으며, 스스로 잘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수동 공격’ 행동을 한다. 상대가 너무 강하거나 관계가 나빠지기 원치 않을 때, 또는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일련의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못 듣거나 못 본 척하기도 하고, 불편한 심기를 문을 세게 닫음으로써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행동이 점점 심화되고 성격화되면 매사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말과 마음의 괴리가 있는 ‘수동 공격적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면 함께 사는 가족들은 속내를 알 수 없으니 계속 눈치를 보거나 화를 풀어주려고 달래는 등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되어 주위 사람들을 지치고 피 말리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동 공격적 성향에 기여했을까? 첫째는 양육 방식이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던 환경에서 자랐거나,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부모와 복종적인 다른 부모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을 수 있다. 복종하는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려고 종종 자녀들에게 ‘거짓말하거나 말 안 하는게 더 좋다’란 암묵적 메시지를 보낸 속에서 컸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예전에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가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거나, 직장이나 가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 감정을 숨기는 자기방어의 행동일 수 있다.
만약 자신이 ‘수동 공격적’이라면 먼저 자기 인식을 향상시킴으로써 다른 사람과 상황에 반응할 때 마음의 감정을 살피고 알아채도록 하자.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는 것이 변화를 향한 첫 걸음이지만 패턴과 반응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하자.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수동 공격적 행동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단계다. 먼저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표현을 연습해보면서 ‘수동 공격’ 대신 불편함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담대함과 건강함을 키워나가길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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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부부가족 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