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집단면역: 스웨덴의 경우

2020-07-21 (화) 정숙희 논설위원
크게 작게
지난 3월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마구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스웨덴은 다른 나라들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택했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강력한 전면 봉쇄정책을 펴는 동안 스웨덴 정부는 코비스-19 통제를 개개인의 자발적인 방역에 맡겼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근무를 ‘권고’했을 뿐 식당 학교 체육시설도 닫지 않았고, 국경도 통제하지 않았다. 1천만 국민들은 외출제한 없이 사회·경제 활동을 유지했고, 심지어 술집에도 자유로이 나다녔다. 오로지 금지한 것은 50명 이상 모이는 집회와 노인요양시설 방문 정도였다.

스웨덴의 이러한 정책을 유럽 각국은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고, 국내에서도 찬반론이 비등했다. 그리고 실제로 스웨덴은 그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7월초 스웨덴의 누적 확진자는 7만여명, 사망자는 5,420명이다. 이웃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3개국 사망자 합계(1,185명)의 4.5배나 되는 수치다. 지난 6월 유럽의 국가들이 국경을 다시 개방하기 시작하면서 스웨덴만 ‘왕따’시키고 국경을 차단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 정부의 ‘집단면역’ 정책은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한편 스웨덴 정부는 집단면역을 택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과 경제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기 위한 방역정책일 뿐이라고 강조해왔다.)


집단면역(Herd immunity)은 사회구성원 다수가 전염병에 노출돼 면역을 형성한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질병의 확산이 느려지고 전염사슬이 끊어지기 때문에 코비드-19처럼 전염성 강한 병일수록 확산 종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인구의 60% 이상이 항체를 가지면 집단면역이 형성된다고 보는데, 코로나의 경우 43%만 되도 가능하다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집단면역 형성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초기에 사망자가 속출했던 이탈리아북부 롬바르디아만이 57%의 높은 항체 형성률을 보였고, 미국 뉴욕은 25%, 영국 런던 17%, 스웨덴 11%, 스페인 5%였다. 코로나 대처의 전범으로 칭송받는 한국은 항체를 가진 사람이 0.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집단감염이란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100~2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한번 전염병이 돌면 속수무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죽어갔다. 그것이 집단면역을 형성했고, 그 결과 병이 사라졌던 것이다. 스페인독감이 가장 최근의 예다. 1918년부터 1년반 동안 당시 세계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5억명이 감염돼 2,500만~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독감은 집단면역에 의해 종식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산 양상이 심화되고 달라지면서 스웨덴의 정책을 실패로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평가라는 지적이 최근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의 감염률은 안정적이라며 “중증환자, 중환자실 환자, 사망자의 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는 매우 긍정적인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 해네지 하버드대학교 부교수도 “스웨덴의 전략은 스마트했다”면서 “전체적인 결과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코비드-19 확진자 수치는 연일 최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WHO 일일보고서에 따르면 18일 하루 동안 전 세계에서 신규 확진자는 거의 26만명, 사망자는 7,360명이 보고됐다. 지금까지 누적수치로는 감염자 1,500만명, 사망자는 6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좀처럼 잦아들지도,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미국은 20일 현재 확진자 400만명, 사망자는 15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보건 전문가들은 실제 감염자는 10배에 달한다고 본다. 무증상 감염자가 거의 절반인데다 아직도 충분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추정이 맞다면 실제 미국의 감염자는 인구의 10%가 넘는다는 것이고, 이대로 가면 저절로 집단감염이 되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난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결국 걸릴 사람은 다 걸리고 죽을 사람은 다 죽고 나서야 끝이 난다면 말이다. 만일 경제를 셧다운 하지 않고 학교도 닫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팬데믹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코비드-19)이 그냥 지나가도록(pass) 하는게 어떠냐”고 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코로나가 미국을 휩쓸고 가도록 놔두는 집단면역이 왜 그렇게 나쁜 생각인지 반복적으로 물었고, 이에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쩌면 트럼프는 지금도 속마음으로 집단면역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코로나 확산이 이처럼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하는데도 학교를 개학하고 경제를 재개하라고 거세게 밀어부칠 수는 없다. 트럼프는 계획이 다 있었을까.

<정숙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