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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안녕하지 않아요”

2020-07-09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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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물론, 온 지구촌이 코로나 팬데믹에 압도당하면서 묻혀 지나가는 이슈들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기후 문제다. 지구 온난화로 야기되는 이상기후는 여름이면 뚜렷이 드러나는 지구촌 공동의 위기 현상 중 하나지만 올 여름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름의 첫날이라는 지난 하지, 북극권 한 마을의 낮 기온이 100도까지 치솟자 기후학자들은 북극 온난화의 심각성을 다시 주시했다. 북극의 기후 변화는 전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주목받은 시베리아의 베르호얀스크는 지형적으로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가 크기로 유명한 곳이다. 북극권에 있는 이 촌락의 최저기온 기록은 섭씨 영하 67.8도(화씨 -90도).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는 이 지역의 오미야콘과 같은 기록을 갖고 있다. 요즘 세계 각처의 좋은 다큐를 많이 제작하고 있는 한국 한 TV방송사가 오미야콘의 겨울 영상을 유튜브에도 올려놨으니 이 정도 추위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다.


이런 베르호얀스크가 요즘 남가주보다 더운 100도까지 치솟았다. 웨스턴 시베리아는 올해 이미 가장 더운 봄을 보냈다. 지금 지구의 기온은 연평균 섭씨 0.6도(화씨 1.1도)씩 상승하고 있다. 북극권의 온난화 속도는 이보다 2배 정도 빠르다. 이 현상은 ‘극지 증폭(Arctic Amplification)’이라고 불린다. 이로 인해 북극권은 여러 환경문제와 지반 붕괴, 산불 등의 재해를 겪고 있다.

북극의 온난화가 2배속으로 급진전되고 있는 첫번째 원인은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기 때문이다. 백색 눈이나 얼음은 햇빛을 반사한다. 태양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얼음이 녹으면서 드러나는 해수면과 검은 동토는 태양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지구를 데운다. 위성사진을 보면 북극해는 구멍이 뻥뻥 뚫린 스위스 치즈 같다. 얼음이 녹았기 때문이다.

북극 얼음은 지구촌의 에어컨이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에 의하면 북극권의 여름 해빙, 얼음덩어리는 지난 30년 새 75%가 사라졌다. 2030년대가 되면 북극해의 여름 해빙은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에어컨 없는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온난화는 조류의 변화를 불러왔다. 북극권 해류는 따뜻한 태평양 난류가 유입돼 북극해의 찬물인 한류가 대서양으로 흐르면서 순환됐다. 하지만 얼음 녹은 물이 비중이 높은 짠 바닷물 위에 떠있는 현상 등이 벌어지면서 조류의 흐름이 바뀌었다. 덥혀진 물이 북극해를 맴돌게 되면서 또 하나의 기온 상승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뀐 해류 때문에 기류 형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는 성층권에 부는 강한 바람인 제트기류. 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 LA에서 한국을 오갈 때 비행시간이 차이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트기류의 속도는 극지방과 열대의 온도 차가 클수록 빨라진다. 하지만 북극 온난화와 함께 기류의 흐름이 바뀌면서 극지의 제트 기류는 남북으로 파도치면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더운 바람이 북극으로 밀려 올라가는가 하면, 반대로 겨울에는 북극 찬바람이 저위도로 몰려 내려가는 이상기후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겨울 시카고 등에서 “북극보다 춥다”는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극지 소용돌이(Polar Vortex)’로 불리는 기류 변화로 북극 찬바람이 밀려 내려와 오래 머물렀던 것이다.

북극 온난화가 영구 동토대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실질적이다.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그 위에 세워진 교량 등 각종 기반시설이 내려앉고, 뒤틀리고, 붕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월말 시베리아 노릴스크의 대형 오일 탱크가 붕괴돼 수천 톤의 기름이 강으로 흘러든 환경오염 사고도 이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해동되면서 얼어있던 미생물이 살아나면서 이산화탄소와 메탄도 방출되고 있다. 이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들. 동토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력한 온실 개스로 여겨진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북극권의 산불이다. 베르호얀스크 인근 등 시베리아에서 몇년 째 계속되고 있는 산불은 인력으로 진화가 불가능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와 시베리아 산불은 성격이 다르다. 시베리아 산불 중에는 해를 묵힌 것도 있다. 지난해 몇몇 시베리아 산불은 그 전 해에 일어났던 산불이 겨울 내내 동토대의 토탄(peat) 늪에서 계속되다가 해동이 되면서 되살아난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바이러스 재앙이 지구를 덮쳤으나 그보다 근본적인 기후 재앙은 소리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구는 안녕하지 않다. 코비드-19를 계절성 독감 정도로 여기고 여기까지 온 미국, 지구촌 공동의 재앙을 막기 위한 파리 기후협정에도 트럼프의 미국은 탈퇴한 상태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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