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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이 ‘왕’이다

2020-07-03 (금) 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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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왕좌의 게임’을 드디어 TV로 보고 있다. 그것도 공짜 시청이다. AT&T 통신사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에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HBO 맥스’를 추가비용 없이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아날로그 케이블 시절부터 HBO는 가성비의 만족도가 높지 않아 선뜻 추가하지 못하던 유료채널이었다.

HBO맥스가 출시된 그 날로 TV에 장착한 스트리밍 기기 로쿠(Roku)를 켜고 HBO나우(HBO 맥스의 구 버전) 채널을 추가해 로그인을 시도했다. 그런데 실패다. 로쿠와 HBO 맥스가 아직 계약 체결이 안돼 접속 불가능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제일 먼저 지상파 뉴스를 시청하기 위해 라이브 TV 스트리밍에 가입했기에 월 15달러의 HBO맥스 구독은 우선 순위에서 또 밀려났다. 물론 일상생활의 꿀팁이 가득한 구글 ‘How to’의 도움을 받아 로쿠 TV에서 ‘왕좌의 게임’을 보고 있긴 하다.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인들을 ‘지상파 TV 뉴스’ 앞으로 몰려들게 했다. 집에 갇힌 미국인들이 평소보다 더 많은 TV를 시청하면서 수년 간 대화의 중심이 되지 못했던 오후 6시30분 지상파TV 저녁뉴스가 돌아왔다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이를 보여준다. 10년 전만해도 9시 뉴스는 인기드라마 못지 않은 높은 시청률을 보여왔다. 뉴스를 하루종일 실시간 보도하는 케이블 채널, 온라인과 디지털 뉴스에 시청자들을 빼앗기고 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트위터가 나오면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수백 만명의 시청자들, 특히 25~54세 연령층을 다시 지상파 저녁 뉴스 앞으로 불러모았다. 주요 정보를 전달하며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로컬 저녁 뉴스가 코로나 시대 공중 보건의 역할까지 담당하기 시작한 것이 또 하나의 이유다.


팩트를 보도하는 지상파 로컬 뉴스가 돌아왔다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보던 일상까지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OTT 시대 개막으로 뉴스 시청 역시 라이브 TV 스트리밍이 수단이어서 각자가 선택한 저녁 뉴스를 본다. 케이블이나 디렉TV와 달리 라이브 TV 스트리밍은 지상파 뉴스를 방송하는 로컬 채널이 베이직으로 들어있지 않다. AT&T TV 나우와 훌루(Hulu) 라이브, 유튜브 TV가 월정액 50~55달러로 ABC, CBS, 폭스, NBC 등의 로컬 채널 방송을 서비스한다. 55달러에 가장 많은 케이블 채널을 제공하는 푸보 TV(fubo TV)에는 ABC와 ESPN이 빠져 있다. 30달러를 매월 내야하는 슬링(Sling) TV는 폭스와 NBC 채널만 있고, 20달러 월정액을 내세운 파일로(Philo) TV는 지상파 뉴스 채널이 없다.

뉴스 선택 하나도 고려할 점이 한두개가 아닌데 케이블을 끊어내는 코드커팅은 코로나 이후 가속화 중이다. 주머니가 얄팍해진 시청자들에게 저비용의 언제든지 가입 취소가 가능한 OTT 선택은 달콤한 유혹이다. 2018년 발효된 ‘망 중립성 원칙 폐지’ 행정명령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망 중립성 원칙은 인터넷 서비스를 전기나 수도처럼 일종의 공공재로 간주해 망(네트웍) 사업자인 통신업체가 콘텐츠를 함부로 차단하거나 감속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이다. 정보의 평등 접근권이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 버라이즌과 컴캐스트, AT&T 같은 통신업체들이 컨텐츠 사업자에 차별적 가격 부과, 자사 콘텐츠 우선정책 등 실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AT&T 가입자는 스폰서 요금제 및 제로 레이팅(데이터요금 면제)이 적용되어 비용 걱정 없이 HBO맥스를 볼 수 있고 버라이즌의 무제한 요금제 및 5G 가입자들은 디즈니 플러스를 1년 무료 구독할 수 있다. 오는 15일 출시하는 컴캐스트의 OTT 피콕(Peacock)이 컴캐스트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들에게 무료 서비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글의 유튜브만이 독자 노선을 걸으며 콘텐츠의 활용범위를 무한 증식 중이다. 정보 검색과 뮤직비디오 시청, 뉴스 전달 등에 이어 코로나 이후 초·중·고는 물론 대학 온라인 원격 수업까지 교육 컨텐츠를 포용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코세라(Coursera), MIT와 하버드 대학의 이디엑스(edX)와 같은 온라인 명강의가 우리 모두를 명문대생으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드림웍스 CEO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컨텐츠가 왕인 시대를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플랫폼이 왕이고 컨텐츠가 킹메이커’라고 했다.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삶의 전부인 요즘 플랫폼의 영향력은 그 자체로 막강하다. 시장 상황, 첨단기술, 경영기업과 전략, 그리고 법적 규제까지 급변하면서 왕좌의 게임은 예견 능력이 아니라 속도 자체가 문제다. 게임의 룰까지 바뀐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도 전쟁의 승자가 왕좌를 지킬 수 있다.

<하은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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