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는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 있는 게 최고지. 비 오는 날 시멘트 바닥에 척하고 달라붙은 젖은 낙엽처럼 말이야.”
30년 전 한국서 첫 직장 생활하면서 선배들이 술좌석에서 해준 충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젖은 낙엽으로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버텼지만 실직했다.
실직은 삶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다고 하지만 실업자로서 삶이 주는 고단함과 위축은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직이 주는 아픔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실직이 이제는 일상의 평범함이 되어 버렸다.
캘리포니아주 고용개발국(EDD)이 지난달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실업률이 16.3%였다. 그 전달인 4월의 16.4%에 비해 0.1%포인트 하락한 수치지만 여전히 코로나19에 의한 실업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LA 카운티의 경우 5월 실업률이 20.6%까지 치솟으면서 가주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일자리가 늘어난 부문은 건설업, 요식업, 관광업 등 주로 파트타임 일자리 위주의 성장에 그침으로 일자리 질이 열악해지는 고용 불안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고됐던 직원들의 복직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회귀가 아니라 임금이나 시간이 줄어들면서 복직을 거부하는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당장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주당 600달러의 지원금이 더해지면서 실업수당을 받는 것이 유리하지만 이것도 이번 달 말이면 지원금이 끊겨 실업수당만으로 생활하기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기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 인위적인 인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이에 의한 차별 해고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다.
오랜 기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해고되는 고령 실업자들은 한국처럼 퇴직금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대출금과 생활비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실업수당만으로 부족한 게 현실.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처지로 몰린다. 고령 실업자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과 근무조건이 열악한 파트타임 노동시장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전직 언론인 나카자와 쇼고는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에서 “고령자는 기업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만큼 노동시장에 난 잡초와 같아 방해만 되니까 베어서 버린다”고 말했다.
월급쟁이들이 비 오는 날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 있지 못하는 이유다. 능력과는 관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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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