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여름이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일상화됐다. 사람은 믿지만, 그 사람의 바이러스는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사회적 대립의 골은 깊다. 마치 세상을 두 동강 낼 듯한 기세다. 스치기만 해도 생채기가 날 정도로 갈등들은 첨예하다. 직장을 잃은 사람, 가게 문은 열었지만 오지 않는 손님들. 임대상인은 상인대로, ‘조물주 위’라는 건물주는 건물주대로 어렵다. 돈을 빌려준 은행은 말만 안할 뿐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이다. 어디 밝고 따스한 뉴스 없습니까. 등불을 들고 찾고 싶은 때다.
초등학교 교사인 루시아나 리라는 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름 정도가 어렴풋이 생각나는 학부모였다. 병원이라고 했다. 만삭인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코비드-19 환자. 이날 응급수술 끝에 5파운드12온스 되는 아이를 낳았다. 예정일보다 5주 빨랐다. 아이는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산모는 3주 이상 혼수상태에 빠졌다.
과테말라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남편과 초등학교 1학년 아들도 코비드-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신생아는 갈 곳이 없었다. 선택은 하나, 당분간 선생님이 돌보는 길밖에 없었다. 아기만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 타겟에 가서 카시트와 아기침대, 기저귀와 인공우유 등을 산 후 아기를 집으로 안고 왔다.
11년 만에 다시 해보는 육아. 아이는 2시간마다 먹고, 밤에도 깨어있는 걸 좋아했다. 온 식구가 매달렸다. ESL교사인 그녀는 아이를 옆에 둔 채 온라인 수업을 했다. 때로는 반 학생들이 선생님께 신생아 육아 팁을 전해주기도 했다. 동료 교사와 이웃들에게 소문이 났다. 신생아 용품들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는 퇴원 후에도 건강 때문에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페이스타임으로 전해주면서 양육은 한동안 선생님이 맡았다. “물론 힘들었다. 하지만 보람 있었다. 언젠가는 이 아이가 내 학생이 되어있을 것”이라며 그녀는 웃었다.
식당 종업원이던 아이의 부모는 모두 직업을 잃었다. 생계대책이 막막한 이들을 위해 기금모금도 시작했다. 딱한 사연이 알려지자 고펀드미를 통해 2만6,000달러 이상이 모였다. 커네티컷 주의 스탬포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사와 간호사 등은 코비드-19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혹 가족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 보호장비를 해도 환자를 돌보다 감염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퇴근하면 몸부터 깨끗이 씻은 후 집안의 격리 공간으로 여겨지는 예컨대 구석방이나 차고, 지하실, 아니면 캠퍼나 차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 콘도와 아파트를 위탁관리하는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의 한 부동산 회사는 빈 유닛을 이들의 숙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 20대 세일즈맨의 아이디어였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비즈니스 출장이 끊기면서 한때 95%에 이르던 이들 콘도나 아파트의 숙박율이 10% 대로 떨어져 빈 방은 많았다.
이 회사는 오하이오 주에서만 150개 이상의 유닛을 의료진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LA, 마이애미, 보스턴 등에 관리하고 있는 호텔방도 내놓았다. 청소비 등을 위해 6만달러 이상을 모았으나, 관리비가 확보되면 유닛 수백 개를 더 내놓을 계획이다. 페이스북 ‘Caregiver Shelter Fund’에 들어가면 신청할 수 있다.
깜짝 이벤트로 동참하는 식당들도 있다. 콘도에 머물던 한 응급실 의사는 이웃 식당에서 배달된 따끈따끈한 라자냐 선물을 받고 감동했다.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한 의료 요원이 무료 숙소를 이용하는 기간은 보통 열흘 남짓.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의료진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와 격려를 보내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메릴랜드 주 처벌리의 한 언덕에는 하루 밤새 ‘BE STRONG’, 강해지세요라는 대형 입간판이 섰다. 이 지역의 중심병원인 프린스 조지 하스피털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 동네 사람들이 ‘병원 언덕’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집 뒷마당에서 늘 이 병원을 보며 사는 한 가족의 작품이었다. 밤이 되면 어둡던 병원이 밝아지기 시작해 마침내 불야성을 이뤘다. 코비드-19 환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처벌리는 메릴랜드에서 코비드-19 발생이 가장 많은 지역. 30대 여성이 남편과 10살 난 아들의 도움을 얻어 합판으로 이 대형 입간판을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르게 새벽 4시30분부터 간판을 세우기 시작해 동틀 무렵 거사를 마쳤다.
출근한 병원 스탭들은 아침햇살 속에 희게 빛나는 이 입간판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하루 일을 시작한다. 환자들도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이 간판을 보며 힘을 얻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 등이 전한 스토리들이다. 증오와 분노 대신 배려와 헌신의 따스한 뉴스를 나누기 위해 간추렸다. 사람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은 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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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