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로 꼽히는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에디터가 최근 사임했다. 지난 3일자 신문에 실린 탐 카튼 연방상원의원의 “군대를 투입하라”는 제목의 외부기고가 언론사 안팎의 비판을 받게 되자 이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기고에서 카튼 의원은 “단 한 가지, 범법자들을 해산시키고 구금해 궁극적으로 단념시킬 압도적인 힘의 행사만이 거리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며 군대를 동원해 인종차별 반대시위를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고는 즉각적인 비판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기자들을 비롯한 수백 명의 뉴욕타임스 직원들은 기고 게재에 항의하는 청원에 서명했으며 다른 언론사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학자들까지 “카튼 의원의 주장은 민주주의 가치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카튼 의원과 그의 주장을 실어준 뉴욕타임스 비판에 나섰다.
논란이 확산되자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우리는 편집절차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시인했다. 오피니언 에디터도 “이 기고는 게재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과했지만 그는 “우리 신문의 오피니언은 독자들에게 반대되는 주장을 제시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반론권 차원에서 기고를 실어준 것이라는 해명을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에디터의 해명은 무엇이 언론의 중립과 균형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흔히들 언론의 중립성이나 공정성이라고 하면 양쪽의 입장을 물리적으로 거의 균등하게 다뤄주는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기사에 대립하는 발언들이나 주장들을 함께 담아내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보도를 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강박적으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부끄러운 언론이라는 오명은 피할 수 있다고들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보도들은 대부분 팩트만을 나열한다. 방송의 경우에는 공정한 보도를 표방하며 발언의 분량까지 정확히 맞추려고 한다. 이른바 ‘기계적 중립’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사실보도를 할 때는 기계적이나마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게 아예 일방의 얘기만 싣고 반대 주장이나 입장은 묵살해버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런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사실 보도를 해야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진실을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다. 단순히 팩트만 전달하는 것으로는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가치판단을 통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뉴스 수용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신문 지면에 기사와 논평이 배치되고 방송에서 보도 순서가 정해지는 것에서부터 이미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미국 기자협회가 지난 1996년 언론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객관성’이 아니라 ‘진실의 추구’라고 윤리규정을 개정한 것은 이런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언론은 대립하는 두 주장이나 입장에 대해 마냥 균등한 무게를 부여할 게 아니라, 가치판단을 통해 관점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기계적 중립’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일관되게 이런 보도태도를 견지해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대표적 언론이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이다. BBC 방송은 가장 기본적인 보도지침으로 ‘적절한 불편부당성’(due impartiality)을 규정해 놓고 있다. 불편부당성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적절한’이라는 수식어다. 민주주의를 비롯해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의 수호를 위해서라면 항상 자로 잰 듯 정확히 중립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안이 옳고 그름의 문제이거나 정의와 불의의 문제일 경우 언론은 판단을 통해 뉴스수용자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논란을 보며 떠올린 것은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는 말이었다. 불의에 대해서까지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 든다면 그것은 그것에 동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일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임한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에디터는 카튼 의원의 기고와 관련해 ‘반대주장’이라는 ‘기계적인 중립’이 중요한지, 아니면 ‘민주주의’라는 미국의 가치가 우선인지를 먼저 고민했어야 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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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