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A 인근 한 작은 학교에 다니는 한인 12학년생이 아주 특별한 졸업식을 치렀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들의 오프라인 졸업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학교가 스페셜 이벤트를 마련했다.
평생에 딱 한 번 있는 고교 졸업식에 대해서 잊지 못할 좋은 추억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선생님과 교직원들이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작은 졸업식’을 통해 축하해준 것이다. 선생님과 직원들은 여러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졸업가운과 졸업증서, 꽃다발 등을 건네며 노래도 불러주고 축하 메시지도 전하고 인생 사진까지 찍었다.
한인 학생은 “캠퍼스에서 모든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훈훈하고 스윗한 이벤트는 난생 처음”이라며 기뻐하고 감격했다. 학생들의 작은 졸업식 이벤트는 학교 소셜미디어에 올려 졌으며 재학생과 학부모들은 ‘좋아요’를 힘껏 누르며 힘찬 응원을 보냈다. 선생님과 교직원들은 동분서주하며 작은 졸업식을 치르느라 몸은 고됐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댓글을 달았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이런 졸업식만도 큰 행운일 듯싶다. 사실 거의 모든 졸업생은 우편으로 보내는 졸업장을 받는 것이 고작일 테니까. 얼마 전 한인타운 집 근처를 산책하다 한 학교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기독교 재단의 전통 있는 사립학교인데 담벼락에는 ‘클래스 오브 2020’의 졸업생 사진들이 크게 걸려 있었다. 하나 같이 사진 속의 졸업생들은 사각모를 쓰고 활짝 웃고 있었지만 왠지 훈훈함보다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캠퍼스 앞을 수놓았던 많은 꽃다발, 오랜 시간 정들었던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고풍스럽고 멋진 캠퍼스 안의 처치에서 근사한 졸업식을 꿈꾸었을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오프라인 졸업식이 불가능해지면서 기발한 축하 세리머니들은 그나마 위안이다. 오하이오주 러브랜드시 교육구 스쿨버스 기사들은 고등학교 졸업식을 못 치르게 된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스쿨버스를 이용했다. 20여대의 버스를 움직이며 졸업 연도 ‘2020’을 만들었다. 교사는 이 모습을 드론을 이용해 촬영하고 졸업생들에게 전송했다. 비록 졸업식은 치르지 못했지만, 스쿨버스 기사들의 깜짝 선물 덕에 추억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캠퍼스 졸업식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가 쉽지 않아서일까.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상 졸업식을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찮다. 예를 들어 사회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 온라인 서명을 받는 체인지(change.org)에는 가상 졸업식을 취소하거나 연기해달라는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가상 졸업식에 대한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의 논쟁도 뜨겁다. 일부에선 “서로 조심만 한다면 안전하게 세리머니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팬데믹 상황에서 대면 접촉을 요구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고 이기적 발상”이라고 맞선다.
가상 졸업식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일부 학교들은 한 발 물러섰다. 하버드와 뉴욕대 등은 “예정된 일정에 따라 온라인 졸업식을 진행하는 것이며 기존 졸업식이 취소된 것은 아니다”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캠퍼스 졸업식을 다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졸업생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고자 온라인 가상 졸업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 가수 레이디 가가, 비욘세,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등이 출연했는데 이중 세계적 아이돌 BTS의 축사가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멋진 매듭도 새로운 시작도 못하고 많이 답답해하고 있을 여러분들 모두 겁내거나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은 연결돼 있어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어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자신의 틀을 깨보는 것이지요. 큰 꿈을 꾸고 한계 없는 가능성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을지, 다시 만나게 될 때 꼭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가능성은 무한하니까요.”
졸업의 의미는 익숙한 것과의 아쉬운 작별이면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설렘이다.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는 특별함이다. 비록 정든 공간과 친구들, 선생님과의 이별은 모자라고 아쉬웠지만 분명 졸업식이 인생의 다는 아니다. 이제 멋지게 도약하고 성장하는 시작을 꿈 꿔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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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