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바뀔까, 바뀔 수 있을까

2020-06-11 (목) 안상호 논설위원
크게 작게
한국은 검찰개혁, 미국은 경찰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두 조직 모두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공권력 행사가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이다. 종종 공권력 남용과 조직이익이 우선인 잘못된 문화 때문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의 효율적인 견제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국 검찰은 상명하복의 거대 단일조직인 반면, 미국 경찰은 1만8,000여개의 독립기관으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어느 정권, 어느 대통령도 이들의 일탈 행위를 강력하게 통제하는데 실패했다.

미니애폴리스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로까지 확산됐다. 인종차별과 경찰폭력에 대한 인류 보편의 분노에다, 독선적인 분열의 리더십이 자초한 미국의 추락이라고 할 수 있다.


시위가 이어지면서 미국사회 내부적으로는 경찰 조직 전반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물론 이같은 흐름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경찰 폭력은 어느 집단에나 있는 일부 ‘썩은 사과’들의 일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경찰폭력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가. 시민들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경찰 문제에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이르고 있다.

LA 시위를 일례로 들 수 있겠다. 한인타운 바로 서쪽, 행콕팍에 있는 LA시장 관저 앞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국장의 경질과 ‘경찰의 돈줄을 끊을 것(Defund the LAPD)’을 요구했다. 로컬 정치권은 대폭적인 경찰예산 삭감으로 이 요구에 응하고 있다.

경찰이 되려면 캘리포니아는 지역에 따라 24주에서 48주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는 16주면 된다. 이발사 자격증을 따는데 걸리는 교육기간의 절반이라고 한다. 이 정도 훈련을 받고 순간 판단으로 인명을 살상할 수도 있는 직업에 투입된다. 일부 경찰의 자질 문제와 함께 허술한 교육과정은 미국 경찰의 맹점이라고 영국 BBC방송 뉴스는 지적했다.

미국 경찰은 직장 선택의 폭이 넓은 직업이다. 한 경찰국에서 문제가 되면 이웃 다른 경찰국으로 옮겨 갈 수 있다. 무엇보다 경찰은 웬만하면 잘리지 않는다. 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철저하게 대외비에 부쳐진다. 문제 당사자는 솜방망이 처벌 후 업무에 복귀하는 예가 허다하다. 경찰 조직의 제 식구 감싸기가 원인이다. 한국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다를 바 없다.

경찰의 수장은 실은 둘이다. 한 사람은 경찰국장, 막후에는 또 하나, 강력한 경찰노조가 있다. LA시 경찰은 연 105억달러인 LA시 예산의 18%를 쓰고 있다. 에릭 가세티 LA시장은 경찰 예산 삭감을 선언했다. 곧 이어 시의회는 1억5,000만달러 삭감안을 들고 나왔다. 원색적인 표현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은 경찰노조였다. 웬만한 시의 시의원은 경찰노조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당선이 쉽지 않다. 경찰노조의 세 과시는 때로 정도 이상이지만 어느 정치인도 감히 이에 맞서려 하지 않는다.

경찰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법적 근거로 1967년에 내려진 연방 대법원 판례인 ‘제한적 면제(qualified immunity)’가 거론된다. 새로운 판례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갈수록 거세다.

이 판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의성실의 원칙 아래 취해진 경찰의 행위는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 취지다. 즉 혼란한 상황에서 벌어진 공권력 행사로 해당 경찰이 소송이나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례가 빈발하는 경찰폭력을 정당화하는 안전장치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많다.


미니애폴리스 케이스도 재판 결과는 별개 문제다. 살인경관은 최고 40년형이 가능한 2급 살인으로 기소됐지만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로드니 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2년 4.29 폭동의 직접 원인은 정확하게 말하면 경찰폭력이 아니라, 폭력 경찰에 면죄부를 준 법원 판결 때문에 일어났다.

미국 경찰의 폭력사는 유혈이 낭자하다. 경찰 폭력은 노동쟁의 현장에서부터 시작됐다. 미국 노동운동사에 남아 있는 1877년 철도 노동자 파업 현장에서는 대규모 경찰 폭력이 자행됐다. 그 후 섬유, 철강파업 때도 악명 높은 경찰폭력은 이어졌다. 노동현장의 폭력은 흑백을 가리지 않았으나, 60년대 민권운동 당시 폭력의 대상은 유색인종, 흑인에 집중됐다.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분노하는 시위가 2주째 미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 시에서는 현행 경찰 조직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공공안전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안까지 나왔다.

이번에는 바뀔까, 정말 바뀔 수 있을까. 대형 총기참사가 벌어지면 들끓는 사회, 그러나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는 나라-. 문득 그 생각이 난다.

<안상호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