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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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시그널

2020-06-03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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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의 흑인남성이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목 졸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 항의시위가 전국적인 소요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가 이어지고 주 방위군이 투입되는 등 준 전시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수선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국민들의 불안과 근심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일부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되면서 당초 메시지가 실종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 사태는 나날이 커지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코로나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미국사회 모순에 대한 불만이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만 튀어도 활활 타오를 기세였던 바짝 마른 섶에 경찰이 성냥불을 그어 던진 것이다. 미국사회의 폭동은 항상 이런 패턴으로 발생해왔다.

흑인들이 경찰의 부당한 물리력 사용에 희생되는 사건은 미국사회에서 일상화된 지 오래다. 양식을 가진 미국인 모두를 분노케 한 대표적 케이스로는 1999년 뉴욕에서 발생한 아마두 디알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아프리카 기니 출신 이민자인 디알로는 바람을 쐬러 자신의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가 영문도 모른 채 경찰관들의 집중적인 총격을 받고 숨졌다.


디알로를 자신들이 쫓고 있던 강간범이라 여긴 경찰이 손을 올릴 것을 요구하자 어리둥절해진 디알로는 얼떨결에 자신의 재킷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이것을 총을 빼려는 것이라 오인한 경찰은 무려 41발이나 되는 총탄을 퍼부었다. 디알로를 벌집으로 만든 경찰관들은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평결을 받았다. 평결 후 미 전국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이후 20년 동안 달라진 것 하나 없이 같은 사건들은 반복되고 있다. 그때마다 흑인들은 분노하고 당국은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약속하지만 가해 당사자들은 공권력의 사용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기 일쑤다. 기소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소된다 해도 유죄 선고율은 극히 낮다.

상황판단을 하기보다 우선 물리력을 사용하고 보는 경찰의 잘못된 행태는 법이 제공하는 비뚤어진 보호에 기인하고 있다. 1967년 연방대법원은 ‘선의’로 인권을 침해한 공무원들에게는 면책권이 부여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의거해 반세기 이상 경찰은 업무 중 자행하는 과도한 총격이나 폭력까지도 ‘공무’라는 미명 아래 면책을 받아왔다.

경찰에게 물리력을 쥐어줄 때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분별력을 갖고 최소한으로 사용하라는 의무를 함께 부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대다수의 경찰관은 선의와 봉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겠지만 그런 자질과 성품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에 상당수 섞여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존중할 줄 모르는 경찰관이 제복을 입고 총울 쥐게 되면 자연히 공권력을 가장한 폭력과 인권유린이 뒤따르게 된다. 가장 손쉽게 이들의 타깃이 되는 것은 소수민족이며 특히 흑인들이 그렇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온갖 편견에 시달리는 곤고한 삶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운전할 때조차 그렇다. ‘흑인으로서 운전하기’(driving while black)라는 탄식에는 이런 설움과 억울함이 깊게 배어있다.

흑인들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적 행위가 비단 공권력만의 문제가 아님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지난 2월 조지아에서는 운동을 위해 거리를 뛰던 25세 흑인 청년이 백인 두 명에게 총격을 받아 숨진 사건이 있었다. 사건 발생 후 수많은 흑인들은 자신들이 뛸 때 범죄자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어떤 행동들을 하는지 언론에 털어놨다.

절대로 어두운 색 옷은 입지 않는 것에서부터 반대방향에서 백인들이 다가오면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는 얘기에 이르기까지 서글픈 고백들이 이어졌다. ‘흑인으로서 뛰기’(running while black)라는 자조적 표현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꼭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living while black) 자체가 이미 죄가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해도 경찰은 거의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대해 한 판사는 “앞면이 나오면 피고(경찰)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원고(피해자)가 지는 동전 던지기와 같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실이 던지는 잘못된 시그널을 바로잡지 않는 한 제2 제3의 플로이드 사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폭력 경찰에 대한 엄중한 처벌뿐이다. 그 작업은 연방대법원이 경찰의 물리력 사용과 관련한 지극히 상식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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