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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암울한 졸업식

2020-05-29 (금)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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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졸업식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5월30일 토요일에 온라인으로 생중계(Live Stream) 할 것입니다. 모든 졸업생은 자신의 개별 메시지를 담을 영상 클립을 제작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가족 및 친구들과 공유 바랍니다. 학생과 졸업생은 학교로 자신의 사진과 영상을 제출 바랍니다. 학생은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어 제출하기를 바랍니다.”

졸업생과 학부모 등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졸업식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취소하면서 여는 Z세대의 인터넷 가상 졸업식 안내문이다. 올해는 대규모 졸업식 대신 대부분 인터넷상의 가상 졸업식으로 대체하고, 학위증 등은 우편으로 배송하고 있다.

올 졸업시즌은 온통 마스크를 끼고 가상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졸업생들로 얼룩졌다. 이들을 축하한다는 취지로 명사들이 보내는 원격 축사다 뭐다 해서 가족 친지들과 오붓하게 지내려던 졸업식은 마치 연말 연예대상처럼 현란하기까지 하다. 영화배우와 가수,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의 연이은 온라인 축사를 인터넷에서 생중계하는 식이다. 코로나19에 걸렸다 회복한 배우 톰 행크스도 오하이오 주립대 졸업식의 영상연사로 등장했다.


코로나 사태로 최대 이익을 보고 있는 유튜브는 이 기회를 놓칠 새라 온라인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를 성대하게 거행한다고 한다. 오는 6월6일 유튜브 오리지널을 통해 올해 졸업하는 전 세계 대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의 방탄소년단을 비롯,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부 장관, 가수 레이디 가가 등이 출연한다고 한다. 이는 졸업생을 위한 축하보다는 얄팍한 상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졸업생들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에게 힘과 용기,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이들이 직면한 상황은 최악의 실업난으로 너무나 어둡고 암울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크게 변화시킨 고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 유색인종으로 미국대통령까지 된 버락 오바마, 사생아 출신으로 토크쇼의 여왕이 된 오프라 윈프리 등은 그동안 유명대학 졸업식장에서 명연설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초심을 유지하면서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지금도 생생하다.

명사들 외에 척박한 환경에서 고난 끝에 졸업하는 졸업생의 스토리는 졸업식장의 분위기를 감동으로 이끌 것이며, 강한 신념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4년전, 노숙자 출신의 흑인 여학생이 역경을 딛고 하버드 대학을 당당하게 졸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험난한 노숙생활 속에서도 하버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녀의 졸업 대표 연설이다. “나는 차가운 길바닥과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생활하며 무료급식과 쓰레기를 뒤지면서 굶주림을 해소했다. 길바닥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꿈이 생겼다.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는 세간의 말에도 나는 항상 옷을 단정히 입고 악착같이 공부했다. 마침내 미 전국 20여개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손에 쥐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아요.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그녀의 스토리는 당시 모든 졸업생들에게 진한 감동과 메시지를 남겼다.

Z세대 졸업자 상당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백수로 남을 확률이 크다. 사각모를 방안에서 쓰고 서성이는 졸업생들이 느끼는 현실은 허탈한 만큼이나 암울하다. 이들에게 역경을 딛고 꿈을 이룬 졸업생들의 힘찬 연설이 이번 가상 졸업식에도 함께 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여주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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