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은 일단 벗어난 것 같다’-. 코로나 19 만연에 따라 내려졌던 봉쇄령이 대폭 해제됐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또 유럽에서 들려오는 안도의 소리다. 그러면 이제 머지않아 정상을 다시 찾아가게 될까. ‘아마도…’
그 ‘아마도’란 답이 그렇다. ‘미국과 서구, 그리고 동북아의 일부 산업국들로 국한’할 때는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머징 마켓, 다름 아닌 신흥개발국과 저개발국가 등으로까지 확대할 때 스토리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안도의 목소리, 그 뒤로 들려오는 것은 우려의 깊은 한숨이다. 코로나 19 위기는 어떤 지정학적 제2의 파장을 몰고 올지….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그런데 대부분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시나리오들인 것이다.
21세기 들어 지구촌을 강타한 대사건 중 하나가 2008년의 금융위기다. 금융위기는 어떤 후유증을 불러왔나. 유로 존이 흔들리면서 브렉시트가 발생했다. 뒤따른 것이 중동, 북아프리카 등지에서의 대량 난민사태다. 포퓰리즘이 만연하면서 제 3세계는 물론 유럽과 미국의 정치풍토까지 변질됐다.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지구촌이다.
코로나 19 위기로 세계 경제는 졸도 직전의 마비 상황까지 몰렸다. 금융위기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날로 고조, 무역에서 경제, 기술, 외교, 군사,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그때까지 그러면 지구촌에는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까.
관련해 우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리는 지역은 서아프리카에서 중동지역을 지나 아시아까지 ‘큰 호(弧)’를 그리고 있는 ‘거대 불안정지역’이다.
2010년 12월 초 유엔식량 및 농업기구는 짧은 경고 성명을 냈다. 세계의 농산물시장이 보이고 있는 극도의 가격불안정성은 세계의 식량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며칠이 지난 12월7일 튀니지의 한 거리행상이 당국의 단속에 항의, 분신자살을 했다. 유사행위가 잇달고 대대적 시위가 발생했다. 식품가 앙등에 분노해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
시위는 곧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아랍의 봄’, 현지인들에 따르면 ‘기아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 등의 권위주의 정권이 잇달아 무너졌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지에서는 시위가 내란으로 확산됐다. 그에 따른 난민사태로 유럽연합(EU)은 자칫 해체위기까지 맞았다.
“코로나 19 위기는 식량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5월초 유엔이 내린 경고다. 사실 코로나 19 위기 이전부터 세계의 식품가격은 앙등조짐을 보여왔다. 이상기후에다가 돼지열병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중국의 식품가는 최대 22%까지 뛰었다. 70년만의 최악의 메뚜기 떼 출현과 함께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곡물가가 폭등했다. 그 정황에 덮쳐온 것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만연사태다.
이와 함께 식품사재기는 세계적 현상이 됐다. 나라마다 봉쇄령이 떨어지면서 인력부족으로 식량의 생산에서 관리, 배급에 이르기까지 공급 망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사재기를 불러온 것. 거기다가 식량 보호주의랄까, 식량 내셔널리즘이랄까 하는 것이 확산되면서 식량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식품가 앙등의 또 다른 주요 요인으로는 팬데믹 사태를 맞은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지적된다. 연방준비은행의 사상유례가 없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국제시장의 주요 상품가격은 일제히 올랐다. 식품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이는 식량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 다가오는 식량위기에 가장 허약한 나라들은 어느 나라들일까. 2010년대, 그러니까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온 식량위기 때 큰 피해를 본 나라들이 또 다시 지목되고 있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중동과 북아프리카지역,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그리고 베네수엘라 등 중미지역의 일부 국가들, ‘거대한 불안정지역’에 몰려 있는 50여 개국들이다.
이들 나라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식량쇼크는 작게는 거리시위에서 폭동, 정권전복 그리고 내란, 때로는 혁명으로 번지기도 한다. 프랑스 대혁명도, 뒤이은 1848년의 혁명도 대가뭄에 따른 식품가 앙등이 촉발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혁명, 또 70여년 후 소련제국 붕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앞서 열거한 대로 ‘아랍의 봄’도 식량위기에서 비롯됐다.
식량위기는 거리시위 격랑(2005년에서 2010년 기간 동안 250% 증가)으로 이어지면서 한편으로 잇단 권위주의 정권 붕괴를 불러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란으로 비화, 극렬 회교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IS) 탄생에 기여하는 등 중동의 정치지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지금, 그러니까 ‘일단 최악은 지났다’는 안도감에 휩싸여있는 현재라는 이 순간은 뭔가 거대한 변화가 내부적으로 태동하고 있는 시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다가오는 식량위기. 그 첫 피해 국가는 어느 나라가 될까. 혹시 김정은의 북한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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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