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을 이루고 있다’면 과장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정도의 표현이 맞지 않을까. 무엇이 그렇다는 말인가. ‘김정은 이후(After Kim Jong-Un)’와 관련된 담론 말이다.
북한의 최대 명절이라는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15일)에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 궁전 참배에 불참했다. 집권 후 처음 있는 일로 이와 함께 일파만파 번져나갔던 것이 김정은 유고설이다.
5월1일 김정은이 마침내 공개석상에 나타나면서 그 유고설은 말 그대로 설로 소멸됐다.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은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I-told-you-so)’식의 들뜬 반응과 함께 김정은은 수술을 받지 않았다며 ‘수령의 귀환’을 반겼다. 동시에 ‘김정은 이후’를 상정한 기사는 한국 국내 언론에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미국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고 있다. 데일리 비스트, FOX 뉴스, 힐, 포린 어페어지 등 주요언론들은 서로 경쟁하듯 ‘김정은 이후’와 관련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연방의회도 거들고 나섰다. 빅터 차 등 북한전문가들을 초청해 비공개로 열린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의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원격회의가 그것이다.
김정은이 살아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왜 20일 동안 잠적했는지, 왜 태양절에 금수산궁 참배는 불참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리고 김정은은 왜 또 다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가. ‘김정은 이후’ 담론형성의 출발은 바로 이 질문들에서 시작된다.
고의적으로 잠적했다. 일각에서의 주장이다.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 해명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스스로 격리한 것이다. 역시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고 20일씩 잠적하고 외부와 완전 두절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
결론은 건강문제로 귀착된다. ‘김정은은 심장혈관질환을 앓았을 수도 있다’- 디플로매트지의 지적이다. 심장마비 증세로 응급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포린 어페어지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왜 금수산 궁전 참배를 불참했나. 고도비만 증세에, 줄담배에, 폭음을 일삼는 라이프스타일. 거기다가 신장과 심장에 이상이 있는 김씨 일가의 병력으로 볼 때 건강상의 문제가 그 이유일 것이다.”
포린 어페어지는 이같은 지적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에 수행했던 한국 의료진들이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해 김정은의 몸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말이 아니다. 김정은의 조기사망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거다. 언제라도 김정은 유고 발생과 함께 북한 지도자 교체 상황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권력승계의 준비가 돼있는 것 같지 않다’. 미 언론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과거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일에서 김정은의 두 차례 권력승계는 스무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김정은의 후계자는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포린 어페어지의 지적이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후계자가 아직 없다. 북한의 헌법도 이 부문에 대해 분명한 언급이 없다. 때문에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1년 전 만해도 최용해가 가장 유력시됐다. 그러나 비 백두혈통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숙부 김평일 등이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김여정 김평일 등 백두혈통의 후계자 후보들이 권력승계의 필수조건인 군부와 국가보안기관 실력자들의 지지를 받아낼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김정은 유고사태가 발생하면 북한은 상당기간동안 권력투쟁에 휘말려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이 살아있다고 해서 북한의 불안정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오리애너 매스트로의 지적이다. 북한 같은 가족통치의 세습 독재체제는 지도자 유고와 함께 붕괴되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3대 세습에 성공했지만 그 성공신화가 4대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북한문제는 그러면 김정은 유고에 따른 수령유일주의 붕괴와 함께 끝날까. ‘그 이후가 더 문제’라는 것이 매스트로의 진단이다. 2차 대전 이후 가족통치의 세습 독재체제가 민주주의로 전이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잔인한 독재체제의 수명이 길면 길수록 특히 더 그런 경향으로 체제붕괴는 극도의 불안정기, 혹은 내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
요약하면 이렇다. 김정은 유고 상황은 언제라도 불시에 닥칠 수 있다. 그 이후에 오는 것은 성공적인 권력승계, 아니면 권력승계 실패, 전면적 붕괴, 그리고 내전상황 돌입 중 하나가 된다. 미 언론들의 전망은 대부분이 비관론에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니까 불투명한 권력승계로 인한 파국적 상황이 올 것이라는 데 미 언론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그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을 가진 정권의 폐쇄성과 불가측성은 위험성의 동의어다. 김정은 유고시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 북한 발 위기가 한반도, 더 나가 동북아지역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지금 이 시간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김정은 이후’와 관련해 미 언론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정작 무사태평에, 한가한 곳은 대한민국 같다. 북한이 고사총도발을 해와도 그만, 오직 건강한 모습의 김정일 위원장 찬가만 불러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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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