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에서 사망자 수가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요즈음에 가장 중요한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적극적인 방역조처를 조기에 제대로 실천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미국과 한국에서 지난 1월21일 동시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왔다. 그로부터 넉달 가까이 지난 5월14일 기준 사망자가 미국 8만6,244명, 한국 260명 나왔다. 미국이 인구는 6배인데 사망자는 331배이다.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손씻기 등 위생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면서 선제적인 조처를 취했느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최근 뉴욕 맨해튼의 심장부인 타임스퀘어의 한 빌딩에 ‘Trump Death Clock’(트럼프 죽음의 시계)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광판 광고가 등장했다. 이 전광판은 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조금만 더 일찍 나섰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사망자들의 숫자를 나타내고자 만들어졌다. 전광판에는 11일 기준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8만여 명의 60%에 해당하는 ‘48,12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표시됐다. 이 광고물을 설치한 영화감독 유진 자렉키는 영국의 저명한 두 명의 감염병 학자 발표를 근거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명령과 휴교령 등을 3월16일이 아닌, 그보다 일주일만 앞선 3월9일에 내렸더라도 미국 내 사망자의 60%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신 발언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도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 조치를 더 일찍 취했더라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쓰라고 강조했던 백악관이 정작 이를 실천하지 않아 권력의 제 1인자인 트럼프 대통령과 제 2인자인 펜스 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사건이 발생해 온 국민을 긴장케 하고 있다.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을 밀착 보좌하는 파견 군인에 이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 케이티 밀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여파로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 등 ‘방역사령탑’ 3인방이 자가격리 또는 완화된 형태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백악관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직장에서 일하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조차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머지 사람들이 일터로 복귀하는 게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지난 11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는 참석자들이 죄다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지만 회견장에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에서는 마스크를 찾아볼 수 없었다.
LA카운티도 지난 8일부터 2단계 경제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코로나19 사망자가 14일 기준 1,712명으로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LA한인타운의 확진자도 201명을 기록했다. 결국 LA카운티 정부도 ‘세이퍼 앳 홈’ 행정명령을 연기하면서 제한적인 소매 영업만을 허용함으로써 현재 8~9월은 돼야 전면적인 경제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조기 정상화를 기대했던 주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코로나19사태로 위험을 피해 집으로 모셔온 80대 노모가 지난 4월말 확진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난 사건이 한인가정에서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노모를 모시던 딸 부부는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손자손녀도 감염 의심증상이 나타나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평가됐던 한국에서도 이태원 클럽 사건이 발생해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일파만파 늘어나면서 방역당국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경제활동을 전면적으로 재개할 경우 다시 코로나19가 재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하버드대 마크 립시치 교수가 발표한 세 가지 시나리오에 따르면 첫 번째 2022년까지 이번 같은 확산이 다섯 번 되풀이되거나, 두 번째 올해 말~내년 초 진짜 대확산을 거친 후 작은 파도 몇 개가 더 몰려오거나, 세 번째 이번 대확산 후 2022년까지 작은 피크 다섯 번을 더 겪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마냥 경제활동을 전면적으로 재개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당국의 딜레마이다. 문제는 한두 달 참고 견뎌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 국민과 방역 당국이 합심해 잘 극복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특히 이럴 때는 개개인의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관리가 필수이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훨씬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각오도 단단히 해둬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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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특집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