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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아메리카’

2020-05-14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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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파우치-. ‘올해의 인물’ 후보를 상반기에 국한한다면 그는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보인다. 국립 앨러지 & 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인 그는 지금 미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코비드-19 전문가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은 코비드-19 사태가 안정되는 시점을 지난 부활절, 4월12일께로 잡았었다. 지나고 보니 턱없는 낙관론이었다. 거의 ‘가짜뉴스’ 수준의 치료약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런 대통령의 회견장에 닥터 파우치 같은 사람이 서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그나마 안도했다.

그는 코비드-19로 10만~20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 추세대로면 불행하게도 그의 처음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을 전망이다. 12일 상원 청문회에서도 경제활동 조기 재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등 소신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어느 여론조사에서도 미국민 70% 이상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를 향한 드센 비난도 있다. 과학을 이유로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변의 위협도 받고 있다. 코비드-19가 이렇게 확산된 원인을 따지면 그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임론도 있다. 그는 국가 전염병 연구기관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그가 진실을 말하는 책무에 얼마나 충실하고,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로 보인다.

언론에 의해 ‘미국의 의사(America’s Doctor)’로 불리고 있는 그는 뉴욕 브룩클린의 약국 집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자전거로 약 배달을 다니기도 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 코넬 의대를 수석 졸업한 그는 군의관과 공중보건 분야 중에서 후자를 택해 작은 세포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바이러스와 면역체계 전문가가 된 그는 36년 전 NIAID 소장이 된 뒤 지금도 같은 직책에 있다. 미국이니까 가능한 일로 보인다.

많은 미국인들은 코비드-19 브리핑을 통해 닥터 파우치를 처음 대했다. 하지만 그가 ‘국민 의사’ 반열에 오른 건 이미 30여년 전의 일이다. 지난 1988년 당시 아버지 부시는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그가 생각하는 미국의 영웅을 질문받자 “닥터 파우치”라고 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는 특출한 연구원, 탑 닥터로 에이즈 연구에 뭔가 이뤄내고 있다”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대상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 에이즈는 걸리면 죽는 병이었다. 공포의 대상이었다. 80년대에 그는 에이즈에 매달려 있었다. 신약이 개발되고 있던 그 때, 그는 지금처럼 거의 매일 언론에 나와 에이즈 문제를 말했다. 에이즈 행동주의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이었다. 신약 승인에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였다. 그는 의약품 승인을 관장하는 연방 식품의약청(FDA) 책임자가 아니었으나 공적 1호였다. 코비드-19처럼 에이즈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미국 정부의 상징이었다. 둘 다 치명적인 전염병이었기 때문이다.

FDA가 신약 승인 전에 거치는 3단계 과정은 확고했다. 첫째는 안전성, 둘째는 효능, 셋째 부작용 유무를 확인한 후 승인여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상황은 급박했다. 에이즈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소생 가망이 없는 에이즈 환자들이 신약의 시험대상이 되려고 줄을 섰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수천명의 시위대는 그를 살인자라고 불렀다. 그는 사무실로 시위대를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안전하다면, 독약이 아니라면 일단 사용을 허락하라.” 그들은 절박했다. 그의 과학이 목숨 구하는 일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코비드-19에서 그의 의학이 비즈니스의 발목을 잡듯.


파우치는 차가운 과학에 사회적인 면, 윤리적인 면, 인간적인 면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 때 알았다고 회고한다. 이같은 생각은 그의 철학이 됐다. 그가 코비드-19를 말할 때 냉철한 과학적 분석과 전망에 더해 인간미와 소탈함이 묻어나온다면 그 때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레이건부터 6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사스, 돼지독감, 에볼라, 지카 등 미국을 위협하는 전염병에 맞서고 있으나 직제상 그리 고위직은 아니다. 그가 소장인 NIAID는 국립 암연구소 등과 함께 연방 보건복지부 소속의 국립보건원 산하 27개 연구소 중 하나일 뿐이다.

5피트7인치의 그는 고교 때는 학교 농구부 주장이었다. “5피트7인치 포인트가드가 아무리 잽싸다고 해도 재빠른 7피트 가드를 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농구선수의 꿈을 접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대신 그는 상대적으로 거구인 대통령 옆에서 허스키한 보이스로 바른 말을 멈추지 않는 ‘크지 않은 거인’으로 변모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면 팔순이 되는 그는 밤늦은 시간 아내와 파워 워킹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코비드-19에 대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자가격리 상태다. 그가 참석하는 백악관 고위회담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백악관 스태프가 동석했기 때문이다. 기막힌 트럼프 백악관의 단면을 다시 보게 된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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