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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본격적 ‘제2의 냉전’으로…

2020-05-1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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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연속이었다고 할까. 김정은 유고설로 지고 새다시피 했던 지난달 12일 이후 20일 동안의 시간은. 김정은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와 동시에 혼란도 어느 정도 진정됐다.

그리고 한 주가 훨씬 지난 시점. 새삼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도대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답은 중국으로 기운다.

김정은이 스텐트 시술이 늦어져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고 밝힌 일본주간지 슈칸겐다이 보도(4월24일)는 중국소식통을 인용했다. 중국의 의료진 50명이 북한에 급파됐다는 로이터통신의 같은 날 보도도 역시 중국소식통을 인용했다.


4월27일에 유포된 유튜브 동영상도 그렇다. 북-중 국경지역의 단동으로 중국군 장갑차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들어있어 북한 내 상황이 급박히 돌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

왜 중국은 이 같은 소문을 사실인 양 퍼뜨렸을까. “중국과 북한관계가 나빠졌다는 신호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워싱턴 프리비컨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코로나 19 위기로 중국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있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위기를 조성하는 거다. 그래서 퍼뜨린 것이 김정은 유고설이라는 거다.

사실일까. ‘죽의 장막’ 안에서 이루어진 일인 만큼 이 역시 진상규명은 어렵다. 그렇지만 뭔가 한 가지를 분명히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 무모한 짓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 체제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8년 이후 중국이 맞은 국내외적 상황은 패퇴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수모를 당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홍콩 민주화 시위로 시진핑의 위상은 크게 흔들렸다. 지난해 말 실시된 대만 총통 선거결과는 베이징에게는 ‘쇼크’ 그 자체였다.

홍콩 사태를 통해 일국양제는 허구라는 게 증명되면서 대만은 아예 중국의 궤도에서 이탈했다. 그러니까 40여 년간 지켜져 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경제마저 성장 동력이 멈추었다.

그리고 맞이한 2020년. 새해 벽두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내습으로 중원천지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나. 14억 인구의 절반이상을 사실상 감금하는 전체주의식의 방역대책으로 일단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그리고 이내 펼친 것이 이른 바 ‘마스크 외교’다.


시진핑 영도하의 중국공산당체제는 바이러스 전쟁의 위대한 승리자라는 선전선동과 함께 역정보전을 펼쳤다. 코로나 19의 진원지는 중국 우한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 그러면서 팬데믹에 허둥대는 서구 각국에 대한 훈계도 빠트리지 않았다.

고의적 은폐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감염시킨데 대한 일말의 회오도 없이 오히려 구세주 중국에 감사하라는 베이징의 그 뻔뻔한 태도에 결국 전 세계적인 백래시(backlash)가 일었다.

“마침내 분노의 화산이 폭발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전 세계적인 경제적 공황을 몰고 온 코로나 팬데믹의 책임을 중국에게 묻는 사태가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게 된 것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온 것은 중국 외교관들의 ‘전랑(戰狼·늑대 전사)식’ 외교다. 중화민족주의로 무장된 이들은 시진핑에 대한 맹목적 충성 경쟁에만 몰두해있다. 이런 중국 외교관들은 외교가 아닌 전쟁을 펼치면서 중국의 위상을 더욱 악화, 고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발끈했다. 영국이, 프랑스가, 독일이, 폴란드가. 심지어 이란도. 이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소송을 통한 코로나 19 피해에 대한 중국의 배상물리기 운동이다. 120년 전 청 왕조의 사주에 따른 의화단 난동으로 피해를 입은 서구 열강이 베이징을 무력으로 점령, 보상을 받아낸 사건의 데자뷔 같다고 할까.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친구가 없다. 중국 혼자다. 그 중국 내부에서도 뭔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시진핑 체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베이징으로서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진주만에서 희생된 미군 장병은 2,335명이다. 9.11사태 희생자는 3,000여명이다. 미국은 그 가해자들에게 정의의 칼을 빼들었다.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 19의 원인제공자, 중국에게도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같은 지적과 함께 제기되고 있는 것이 중국의 자유화, 다른 말로 해 중국공산당 정권 레짐 체인지론이다. 중국의 민주화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코로나 19 사태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톈안먼사태 이후 전 세계의 반중정서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미국 주도의 연합세력은 중국공산당의 통치권에 도전해올 것이다. 중국은 군사적 대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만 한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CICIR)의 경고다. 뭐라고 할까. 극도의 불안감으로 잔뜩 위축돼있다고 할까.

“코로나 19 위기는 미국과 중국 간의 제2의 냉전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202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전야인 1930년대를 방불케 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어지는 포린 어페어지의 경고다. 그 경고는 경고로만 끝날까, 아니면….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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