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를 잡을 수 있을까. 여론조사를 보면 승부의 키를 쥐고 있는 경합주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에 약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최근 바이든에 대해 제기된 20여년 전 성추행 의혹은 그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또 코로나19 긴급구호금 덕분인지 지난 주 나온 갤럽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49%로 최고치를 찍은 것도 바이든에게는 좋은 뉴스가 아니다.
엎치락 뒤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결국 승부를 가르게 될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현재의 지지율 크기가 아니라 과연 얼마나 많은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느냐이다. 지지층의 열정과 결집력이 대권의 향방을 가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바이든으로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은 경선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의 표심이다.
샌더스 지지자들 표심에 왜 신경 쓸 수밖에 없는지는 지난 2016년 대선분석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샌더스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12%는 대선에서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 8%는 3당 후보를 골랐다. 3%는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다. 트럼프가 전체 득표에서 지고도 대통령이 될 있었던 것은 경합주들에서 힐러리에 1% 미만의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샌더스 지지자들의 표심이 대선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봐야 한다.
올해 분위기도 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11월에 바이든을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샌더스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중도적인 바이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불만이 가장 흔한 이유다. 바이든이 결국 트럼프에 패배할 것이라고 지레 회의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바이든에 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샌더스 지지자들조차 “코를 움켜쥔 채 마지못해 참여하는 선거일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마디로 샌더스를 지지할 때 표출했던 열정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샌더스 쪽으로 기우는 듯하던 민주당 경선 판세가 뒤집어지기 시작한 것은 흑인들이 다수인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 바이든이 승리하면서부터이다. 오바마 영향 때문인지 바이든은 흑인들 사이에 절대적인 인기를 누린다. 샌더스의 공약이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처지를 훨씬 더 깊이 헤아려주고 있음에도 흑인들의 표심은 바이든에게로 몰렸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오랜 세월 이상주의에 배신당하고 상처 입은 역사 때문에 흑인들 사이에는 유토피아적 환상보다는 현실성을 먼저 헤아리는 정서가 형성됐다”고 풀이한다. 그래서 급진적 공약보다는 이른바 ‘실용주의’라는 이름의 중도적·점진적 개혁을 선호하는 기류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이든의 정치적 스탠스이며 민주당 기득권 세력의 이념적 좌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중도적 실용주의가 미국의 모순과 병폐를 시정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레이건 퇴임 후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은 16년이나 백악관을 차지했지만 불평등은 어떤 완화의 조짐도 없이 계속 악화돼왔다. 오바마 행정부 아래서 빈부격차는 오히려 이전 부시 행정부 때보다도 더 나빠졌다. 현실을 내세우며 계속 타협만 거듭해온 결과이다. 민주당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진보색채를 보다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엄습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의료체계 붕괴와 경제 붕괴라는 ‘쌍둥이 위기’는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때 많은 유권자들이 급진적이라 여겼던 샌더스의 공약들이 지금은 가장 시급하고도 현실적인 처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샌더스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사회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의료뵤험은 직장의 베니핏이 아닌 보장된 권리가 돼야 하며, 경제적 권리는 인권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자신의 평생소신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바이든은 이런 샌더스의 입장을 자신의 공약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단지 샌더스 열성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미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도와 실용주의라는 기존 민주당의 뜻뜨미지근한 정책으로는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을 수도, 미국의 고질병을 치유할 수도 없음을 바이든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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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