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백두혈통과 우상숭배 체제

2020-05-04 (월) 옥세철 논설위원
크게 작게
김정은, 김여정, 김평일…. 김정일, 김정남, 그리고 김일성. 북한 공산왕조의 성골, 이른바 백두혈통의 면면들이다.

“살아 있나?” “아마도.” “건강 한가, 그러면?” “그건 아니다.” 벌써 몇 주째인가. 김정은 유고설이 나돈 게. 그에 따른 온갖 소문을 두 마디 문답식으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이와 함께 들먹여지고 또 들먹여져온 것이 김일성가 사람들의 이름이다.

‘백두혈통만이 수령직을 계승할 수 있다’- 이를 전제(이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로 ‘김정은 이후’와 관련해 이들의 이름이 들먹여지고, 또 들먹여지고 있는 것이다. 지겹다 못해 이제는 피로감마저 몰려온다.


백두산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수령유일주의의 김씨 왕조, 사이비종교집단 같은 그 최악의 독재체제가 대대손손 이어져야 한다는 것인지. 북한주민들은 피와 공포와 억압 가운데 개돼지 같이 사육되고….

독재자들은 자식에게로의 권력세습을 선호한다. 우파나, 좌파를 막론하고. 권력을 물려준다는 것은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 독재체제에서 왕조로 변모시키려든다. 그 때 가장 큰 장애요소는 권력의 이너 서클이나 군부이기 십상이다. 때문에 까닥 잘못하다가는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

혹시 권력세습에 성공할 경우라도 독재자의 2세는 명목적인 통치자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점에 있어 김씨 왕조의 북한은 아주 독특한 체제다.

좌파 체제냐, 우파 체제냐. 종잡을 수 없다. 그게 수령유일주의 북한체제다. 시작은 분명이 좌파 공산주의였다. 그 정권이 권력세습의 왕조로 탈바꿈했다. 단순한 세습정도가 아니다. 대대로 수령을 신격화한 우상숭배 체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북한 전역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에, 기념탑만 1만1,000개가 넘는다. 금강산 1만2,000봉도 모자라 북한 전역 명소마다 새겨진 것은 수령에 대한 찬가다. 세기의 독재자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일찍이 이루지 못한 위업(?)을 성취했다고 할까.

일제강점기 공산혁명을 꿈꾸며 항일전선에서 붉은 깃발아래 죽어간 수많은 좌익인사들. 이들이 혹시 살아나서 백두혈통의 우상에, ‘짝퉁’ 신화로 온통 얼룩져진 북한을 바라보면 뭐라고 말할까. 괜한 짓을 했다는 한탄만 터져 나오지 않을까.

‘그 북한 수령유일주의 체제가 이제는 한명(限命)에 다다른 것 같다’-. 김정은 이후와 관련해 여기저기서 나오는 진단이다.


그 중 하나가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분석이다. 식량부족과 함께 또 한 차례 대대적인 아사사태에 직면해있다. 거기다가 코로나 19 창궐이 임박해있다. 이것이 현재 북한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기아와 전염병 만연의 위기에 봉착해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북한은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으로 보여 이는 전체 동북아지역을 불안정 상태에 빠트리고 자칫 오산에 따른 전쟁으로 몰고 갈 위험마저 높이고 있다.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대다수 북한주민이 영양실조상태에 면역력이 손상돼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다가 공중보건 시스템이란 것은 없는 것이 현 북한의 실정이다. 그러니 코로나 19의 창궐은 시간문제다.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의 또 한 차례 핵실험 가능성이다. 하노이에서 망신을 당했다. 그러니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내 상황이 어렵다.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한 방’이다. 그걸 통해 여론을 한 곳으로 몰 필요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국제사회는 정신이 없다. 이 때가 도발의 호기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핵실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무슨 말인가. 북한은 위기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고 이는 동북아 전체를 혼란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거다.

“…그 정황에서 김정은 이후가 흔들릴 경우 북한 체제는 존속자체가 위협받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진단이다.

권력세습 체제에서 새로운 지도자로의 매끄러운 권력이양은 국내 정치 안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경우 이른바 백두혈통으로의 순탄한 권력승계가 그것이다. 가족통치 형 독재체제에서 그러나 권력이양이 순조롭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그 때문인가. 2차 대전 이후 붕괴된 세습 형 가족 독재체제의 평균 수명은 32년으로 끝나고 3대 세습까지 이어진 경우는 거의 찾을 수 없다. 70년 3대 세습으로 이어진 북한체제는 일종의 역사적 변종이라면 변종이다.

“…그러나 과거에 보여줬던 체제의 탄력성이 미래에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포린 폴리시지의 지적이다. 식량난에, 코로나 19 위기 등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엄중하다. 김정은 이후를 대비한 권력승계도 분명치 않다. 그런데다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경고는 한 번 체제균열이 일기 시작하면 예기치 않은, 급속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세습 형 가족 독재체제가 보이고 있는 공통된 특징으로 첫 붕괴 신호가 감지된 후 1년을 넘기기 못하고 체제는 분해되고 만다는 거다.

백두혈통이 소멸된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