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금 더, 조금 더

2020-04-04 (토) 조민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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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가 많이 먹도록 줄곧 중고차만 타고 다녔다. 그러다 한번은 큰 맘 먹고 새 차를 사기로 해 도요타 딜러에 가서 샤핑을 했다. 도요타의 MR 2라는 컨버터블이 내가 지출할 수 있는 예상보다는 4∼5,000달러 비쌌지만 스포츠카 식으로 멋있어서 꼭 타고 싶었다.

그 차는 좌석이 2개밖에 없고 트렁크도 아주 작다. 같이 샤핑하러 간 본당신부는 내가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 신자들이 여자나 꼬드기러 다니는 신부라고 생각한다고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하는 수 없이, 아니 그런 차를 탈 자신도 없었지만 결국 토요다 RAV 4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RAV 4도 내가 타기에는 과분한 차다. 한번은 한 신자가 아들이 군대 갔다고 아들이 타고 다니던 혼다 스포츠카를 일주일 빌려준 적이 있다. 그 차를 타고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성당 장례식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혼다 컨버터블을 몰고 폼을 잡고 들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 적이 있었다. 그땐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내가 사지 못한 스포츠카만 보면, 혹은 컨버터블만 보면 자꾸만 타고 싶고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자꾸만 더 좋은 차를 타고 싶고, 더 돈 많이 갖고 싶고, 더 높은 명예를 얻고 싶고, 더 유명해지고 싶고, 이렇게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내 마음속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야, 네가 그래도 되는거냐 스스로 깜짝 놀라 자신에게 물어본다.

이렇게 정신없이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쫓아다니다 문득 인생을 다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단다. 1만 달러를 벌면 1만 달러만큼 행복하고, 10만 달러를 벌면 10만 달러만큼 행복하고,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벌어야 하고, 아무리 벌어도 충분하기는 애초에 틀려먹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금만 더! 더! 더! 하며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잘 쓰는데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미 굉장히 많은 것, 어쩌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소유하고 있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한 번 되살펴보자. 사방에 너무 많이 쌓아놓고 살고 있지나 않는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템포러리(temporary)다. 임시로, 잠시로, 나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게 내가 천년만년 쓸 수 있고 천년만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다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그분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땅에 가득한 보화! 결국은 남 좋은 일만 시킬 뿐이고 내가 가버린 후에는 내 것이 아니다. 하늘에 쌓아둔 보화만이 결국 자신의 영혼과 영생을 위해 의미가 있다.

<조민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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