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함께 있다

2020-04-04 (토)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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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필수 업종이나 필수 활동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집밖 출입을 제한한다는 비상명령이 내렸다. 자택 대피령인 ‘세이퍼 앳 홈(SAFER AT HOME )’ 이 시행되자 지인들의 전화나 카톡 문자를 여기저기서 수 없이 받게 된다. 넓지 않은 집안 공간에서 개미 쳇바퀴 돌 듯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답답한 심정이 침통한 기분에 젖게 한다는 말과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 될 것이라는 예측으로 전전긍긍하는 한숨 섞인 내용의 얘기들이다.

활발히 현역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친교모임을 좋아해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던 사람들에겐 사회적 거리라는 이름으로 사람과의 만남이 단절된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가 않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옛말처럼 이럴 때일수록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하면서 살면 이 힘든 시절을 견디는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정도이다.
위로도 되지 못할 말만 할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음이 안타깝다. 하루의 일과를 거의 집안에서 하는데 이력이 난 시니어들에게는 외출금지령이 크게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뿐 아니라 활동영역도 좁아진다.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수는 늘어나고, 세월이 지날수록 인간관계가 줄어들면서 일상이 고요하고 쓸쓸해진다. 자연의 이치처럼 자연스런 현상이니 도리 없는 현실이다.


사회활동이 줄어드니 자연히 만나는 사람도 적어져 조용한 사색에 잠길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얻는 좋은 점 중에 하나이다.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들고 생각은 많아진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었다고 완성형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깊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적한 삶에서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며 몇몇 지인들이나 문우들과 전화나 카톡으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니 비록 만나지 못한다 해도 인간관계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져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면서 온갖 크고 작은 세상 풍파를 경험하면서 그 경험들이 삶에 굳은살처럼 박힌다.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경지에 오르며 인생의 내공이 무릇 깊어간다. 특히 우리 한민족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경험과 관록이 있고 위기에 대처하는 지혜와 슬기도 있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패기와 열정이 있는 것이다.

비록 코로나19라는 삶의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해도 숨을 쉬며 살아있는 동안 우리에게는 내일이란 것이 있기에 우리는 그 내일을 위해 지금 어떻게 살지 깊이 고민하며 생각해야 한다.

힘든 시절을 통과해 나갈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이웃이, 가족이 나와 함께, 우리가 함께 있다는 자각이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동하는 가슴일 것이다.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받는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축적 된다.

지금은 자유로운 외출이 금해져 각자 처소에서 따로 따로 한적하고 적막한 삶을 산다 해도 더불어 생존하여 봄꽃들을 볼 수 있도록 지인이나 이웃들과 전화나 카톡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부족한 것들에 대해 고마운 도움의 손길을 서로에게 펼치며 기도할 때, 공포의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삶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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