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권과 자유권

2020-04-03 (금) 한영국 소설가
작게 크게
온 세상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코비드19이 정말 박쥐로부터 시작돼 중간 숙주 하나를 거쳐 인간에게 옮겨온 재난이라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조심스러워야 할 것도 없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서 먹을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며 살아왔을 텐데, 이 적응의 과정에도 금기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그런데 이런 금기 영역의 침범은 먹거리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데 우리의 비극이 있다. ‘미식’의 이름으로도 이런 한계는 가볍게 무시되고 탐험된다.

진귀한 식재료를 찾는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용의 수염과 봉황새’라는 요리에는 100마리가 넘는 ‘잉어의 수염’과 ‘표범의 태아’ 등이 재료로 쓰였다.(잉어의 입에는 양쪽 두개의 수염 밖에 없다.) ‘곰발바닥 요리’는 북극곰의 오른쪽 앞 발바닥이 특상품인데, 꼭 오른쪽 발바닥이어야 하는 이유는 곰이 벌집의 꿀을 꺼내기 위해 오른쪽 앞발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오른쪽 앞발이 벌에 집중적으로 쏘여 로열젤리보다도 더 달콤한 식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또 ‘제비집’ 요리의 최상품은 ‘빨간 제비집’이란다. 집을 빼앗기고 또 빼앗긴 제비는 타액이 다 말라붙어 피를 흘리며 집을 짓기 때문에 맛이 좋다는 것이다.

거위 간 요리인 ‘푸아그라’는 어떤가? 간에 지방이 많을수록 맛이 좋아서 사육자들은 거위의 목을 철사로 붙들어 매고 먹이를 쏟아 부어 토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거위는 정상 체중의 10배의 몸무게가 되면서 지방질이 풍부한 간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또한 다이아몬드와 비취와 산호를 갈아먹은 여자들도 있고, 정력에 좋다고 루비를 갈아먹은 남자들도 있다. 요즘도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금박이 뿌려진 디저트가 나온다. 먹이사슬의 위아래는 어쩔 수 없다 쳐도 혀와 돈 잔치를 위한 이런 자연의 학대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작년 2월 오하이오의 톨레도 시 주민들은 ‘이리 호의 권리장전(Lake Erie Bill of Rights)’을 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호수도 인권처럼 ‘존재하고, 번창하고, 자연적 진화를 할 독자적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자연도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엄연한 법적 권리를 가진 한 개체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개념은 이미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 환경오염을 막는 데 실효를 거두고 있고, 미국에서도 오클라호마와 오레곤 주에서 실험되고 있다.

코비드19가 아무리 큰 재앙이어도 박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에게 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박쥐를 건드린 인간의 문제이니 이는 명백한 인재다. 그러니 자연이 자연권 안에서 저마다 스스로 안녕할 때, 인간도 그 안에서 안녕할 수 있는 것이다.

<한영국 소설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