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반가움보다는 괜찮으냐는 인사부터 앞섰다.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밤 시간인 줄 알면서도 전화했다는 그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일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쾌활하고 씩씩하던 친구였다. 내가 의기소침해 있을 때 나를 웃게 만들고 일어설 힘을 주던 그녀인데, 웬일일까.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로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올해는 계획대로 뭐가 좀 되나 싶었는데, 모든 일상이 정지되면서 일정표에 있던 약속이랑 일정이 모두 지워졌어. 일주일에 두어 번 나가던 강사 자리도 다 취소되었고. 그토록 원하던 자리가 나서 막 계약하려던 참이었는데 이 일이 터졌잖아. 꿈이 좌절됐다는 것, 그게 경제적인 타격 못지않게 힘들더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거든.”
나의 확신 없는 위로에, 자기는 요즘 불면증과 무기력감에 빠져 지낸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마스크를 꼭 쓰라고 해. 한 사람당 마스크 두 개를 살 수 있는데 그걸 사러 약국을 몇 군데씩 돌아야 해. 식구들 밥을 해야 하니 장보러 갈 때 하나 남은 마스크를 써버리면 급한 일이 있어도 꼼짝도 못하잖아.” 그녀의 음울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흔들었다.
아침에 눈뜨면 확진자가 어디서 몇 명 늘었는지 습관처럼 확인하는 게 그녀만일까. 스마트폰으로도 코로나바이러스 관련내용만 보게 된다.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이 있다고 하면 마음이 그네를 타고. 나는 심리 방역의 필요성에 관해 듣던 기억이 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확산에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인데,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인 백신인 셈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종식된다는 희망을 놓지 않기, 행동수칙 잘 지키기, 믿을 만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활용하기 등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코로나19 전파에 따른 우울감)에 대비하는 심리방역이 필요할 거라고 말했지만, 실은 나 자신이 위로받고 싶은지도 몰랐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하면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길을 가다가 어쩌다 기침이라도 하면 따가운 눈총을 감수하면서도 죄지은 기분이 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은 서너 시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표면에서는 2~3일까지도 살아남는다는데, 대부분 생필품 포장이 플라스틱이니 만지는 것도 겁이 난다.
두려움과 공포, 걱정과 불신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감염된 사례가 발표된 후에는 한쪽 구석에 몸을 밀착시키고 움츠리고 있다가 내리는 광경이 드물지 않다. 20층이나 되는 집을 걸어서 오르내릴 수도 없는 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정국가 사람이 기피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국가도 인종도 구분이 없으니.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가 설명한 인간의 욕구는 단계별로 다섯 가지로 나뉜다.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생리적 욕구로부터,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그리고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위협을 받는 것이다.
2차 3차 감염이 현실화하면서 타인뿐 아니라 누구도, 아니 자기 자신마저도 믿기 어려운 시간을 살고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남에 따라 감염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타인을 근거 없이 의심하고 경계하는 심리가 확산한다면 심각한 일 아닌가.
‘설마’ 또는 ‘나 하나쯤’ 하는 생각은 사태를 키울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 역시 바이러스만큼이나 전염력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몸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익히 알고 있듯이 손 자주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도 권장사항이다. 신체적으로는 거리두기를 하더라도 마음의 거리를 좁혀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며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되면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러설 것 같지 않던 겨울도 때가 되니 봄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 와중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친구야,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무시하고 인공적인 것에 너무 의존해 달려온 게 아닌가 싶구나. 과학의 이름으로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테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말에 희망을 걸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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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