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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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沈香)

2020-03-27 (금)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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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오.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陸水) 조수(潮水)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서정주의 제6시집 ‘절마재 신화’ 중에서)


알지도 못하는 먼 후대를 위해 참나무 토막을 내어 개펄에 묻는 초시간적 초이기적 계대 행위를 매향(埋香)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매향하는 사람들은 깊은 강물이 흘러 바닷물과 만나는 검푸른 개펄 깊이 참나무를 묻었다.

매향하는 사람은 자신이나 자신의 후손들을 위하여 참나무를 묻는 것은 아니다. 그 혜택을 입을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허허한 마음으로 참나무를 개펄에 묻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그것은 침향(沈香)이 된다.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지 금보다 값이 더 나간다.

한 나그네가 자기 집 앞길에 잣나무를 심고 있는 랍비에게 물었다. 이 잣나무가 언제쯤 열매를 맺게 될까요?“ ”글쎄, 한 50년 후 쯤 되겠지.“ 나그네가 다시 물었다. “랍비께서 이 열매를 따서 드실 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니지. 나는 다만 후손들을 위하여 이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라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우리 조상들도 이 잣나무를 심었거든.” 인간이 된다는 것은 후대의 누군가에게 책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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