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인 옛 은사

2020-03-25 (수)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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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전에 썼던 칼럼들을 다시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과거 은사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긴 것도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인 은사들 가운데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 생각났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12학년 때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매년 12학년 학생들 중 최상급자들(Superlatives)을 선정했다. 가장 성공할 가능성 있는 학생, 가장 옷을 잘 입는 학생, 가장 인기있는 학생 등을 남녀 학생 한 명씩 선정했다. 이는 12학년 학생들의 투표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선정된 학생들은 학교신문에 사진과 함께 발표 되었다. 그렇게 뽑히는 것은 나름대로 명예였다.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가장 지적인 학생’으로 선정되었다. 같이 선정된 여학생은 전교에서 성적이 최우수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4년 동안 전 과목 A를 받고 졸업한 학생은 그 여학생 밖에 없었다.


요즈음과 달리 당시에는 4년 동안 모두 A를 받는 것은 드물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나의 선정은 2차 투표까지 갔다고 한다. 1차 투표에 3명이 동수의 표를 얻었다. 그런데 그 세 명을 놓고 2차 투표를 벌이자 표가 나에게 몰렸다는 것이다. 다른 두 경쟁자들 모두 친구였는데 하버드 대학과 MIT에 진학했다. 같이 선정된 여학생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현재 버클리 대학에서 화공학 교수로 있다.

이제 학교신문에 게재 될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장소로 화학 실험실을 정했다. 실험가운을 두르고 보호안경을 썼다. 그런데 보호안경을 쓰니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보호안경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그 사진은 학교 신문에 게재 되었다.
신문이 나오던 날 화학 실험실 문에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학교 신문에 실린 내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 밑에 빨간 펜으로 “SO WHY ARE THEY SO DUMB ABOUT GOGGLES?” 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즉, “그런데 왜 보호안경에 대해서는 바보 같은가” 라는 질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황급히 떼어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학교사인 윌리엄 던컴 박사가 써 붙여 놓은 것이었다. 화학 실험실에서는 항상 안전수칙을 지켜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기에 학교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받은 두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했던 것이다.

던컴 박사는 나를 많이 아껴 주었다. 내가 1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대표해 가버너스 스쿨에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란슬레어 공과대학으로부터는 ‘수학 과학 상’을 받도록 추천해 주어 결국 하버드 대학에 지원할 꿈까지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준 분이다. 대학입학 지원 때 추천서도 잘 써 주었다. 그런 분이지만 나의 잘못에 대한 지적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리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선생님은 대학교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다. 11학년 때 나는 선생님의 물리 수업을 듣기도 했다. 출중한 지도력으로 과학과 부장교사로 있는 동안 우리 학교의 과학 프로그램이 그 어느 다른 학교에 비해 뒤지지 않도록 발전시켰다. 내가 12학년 때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유기화학 과목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맨’ 이었던 선생님은 뉴턴의 생일에는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빌려와 물리 수업 교실에서 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은 혈우병을 앓고 계셨다. 내가 졸업 후 몇 년 더 가르치시다가 그만 두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던 중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찍 돌아 가시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그 신문 사진 클립은 내가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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