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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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격려

2020-03-21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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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까워오면서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해지고, 대학진학을 앞둔 학생이나 부모들은 어느 학교에서 좋은 소식이 올지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미국대선 민주당 경선 중 유일하게 남은 여성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지자들에게 안타까운 일이라며 여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대리석 천장을 뚫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변화가 많은 요즘에도 사람들의 고정된 의식의 틀을 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의 아들은 어릴 때 무척 부산하여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자기에게 주의를 집중해주기를 기대하곤 하였다. 우리 부부가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으면 우리 얼굴 앞으로 와서 얼굴을 손으로 붙잡고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계속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여 우리는 아들에게 “쉬지 않고 말하는 기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도 주의가 산만하고 학교에서 엉뚱한 질문을 많이 해댔다, 여러 선생님들과 상담할 때 마다 아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아들이 주의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 가운데 다른 여자 선생님과 상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업시간에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을 들더니 왜 미국에는 아직까지 여자 대통령이 없냐는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오랜 기간 교직에 있었는데 그런 질문을 한 초등학생은 없었다면서 제임스는 엉뚱한 게 아니라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라고 분석을 해주었다.

우리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위안을 하고 지냈는데 그 후에도 엉뚱한 발언이나 생각으로 우리를 놀래 키면서 성장을 하였다. 가끔씩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나름 논리를 펴곤 하였는데 아내는 많은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좋으니까 계속 공부를 해보라고 격려하였다,

아들은 긴 과정을 거쳐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분야에 열정이 있는지 서서히 찾아갔다. 시간이 흘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 수련의 과정을 하고 있다. 새벽 일찍 병원에 나가 일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고등학교 때 새벽같이 일어나서 학교는 가지 않고 파도타기 하러 갔던 일도 수련의 과정에 이렇게 쓰여 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졸업식 때 축하해 주며 “너는 어릴 때부터 얌전하지 않고 독특해서 걱정을 했었다”고 했더니 그는 “어떻게 남자아이가 얌전하게 앉아있기를 기대하세요? 또 경험도 없이 장래에 무엇을 좋아할지, 잘할지 처음부터 아는 아이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라고 반문했다. 자기를 문제아라고 생각했던 선생님께 졸업식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참고 격려해준 엄마에게 특히 감사한다고 하였다.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고 격려한 것이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요즘 유행병에 대한 예방접종과 신약 개발이 간절한 시점이다. 의학에서도 기존의 생각을 벗어나야 중요한 발견을 하는 경우가 많다. 스코틀랜드 출신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의 여름에 포도상구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배양기들을 그대로 둔 채 여름휴가를 떠났다. 몇 주 후 그가 다시 실험실에 돌아왔을 때, 그는 우연히 열려있던 배양 접시 중 하나에서 솜털 형태의 푸른색 곰팡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잘 관찰하여 푸른색 곰팡이 주위의 포도상구균들은 모두 성장이 억제되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곰팡이로부터 추출한 물질에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니실린은 발견 초기에는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이것은 페니실린의 작용이 당시의 화학요법의 연구 방향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반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세균을 죽이는 물질은 숙주의 세포를 파괴시키지 않고서는 세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결국 플레밍은 “곰팡이에서 얻은 물질은 실험실에서는 항균력이 우수하지만 인체 내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연구를 포기했다.

영원히 사장될 뻔 했던 페니실린 연구는 10년 뒤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으로 넘어갔고 마침내 정제된 페니실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페니실린 주사는 감염 환자에 매우 높은 항생능력을 보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였다.
새로운 발전이 있기 위해서는 준비되고 열린 마음이 필요하고, 그 뒤에서는 기다림과 격려가 받쳐주어야 됨을 느낀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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