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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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옆의 한국

2020-03-21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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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인접국인 한국에서 정부와 국민이 단결해서 이 바이러스와 전면적인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왜 하필이면 중국과 인접국가가 되어서 국민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한국의 지리적 위치가 새삼 원망스러웠다.

역사를 돌아보아도 중국의 인접국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한국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대국의 횡포로부터 국가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천 년 조공을 바쳐 왔고, 왕자가 볼모로 중국에 잡혀가거나, 임금이 중국 황제 앞에 무릎을 꿇거나 하는 국가적 수모를 겪었다. 한편 중국에서 유교, 도교, 불교사상이 한국에 전해지고, 이들 전수된 문화와 한국고유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일찍부터 문화민족으로 수천년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유형무형의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바로 세종대왕 재위 중 1443년에 창제한 “나랏말싸미 중국과 달아 문짜와 서로 맞지 않으니…”로 시작하는 훈민정음이다.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가지 믿기 어려운 사실은 한글 창제 선포이후 500여년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한문은 교육받은 엘리트의 글이고, 한글은 언문이라 해서 무식한 대중의 언어로 하대 받았다는 사실이다.

한문화 숭상은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본 식민지시대까지 계속되었고 심지어 독립운동을 하던 지식인들끼리도 한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주목할 것은 한자 숭상이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있던 것과 달리 중국인들에 대한 감정은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국어선생님이 칠판에 큰 글자로 “中華民國(중화민국)”이라고 써놓고, “얘들아, 이 네 글자를 봐라. 중국인들이 자기나라가 ‘세상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나라’ 라고 거만을 떨고 있는 증거란다” 하시면서 못마땅해 하던 생각이 난다.

이런 중국사람들이 어느 순간 세상에는 자기나라보다 “더 큰 세상 한가운데에서, 더 크게 빛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져서 유명해진, 중국인 저자 케빈 콴의 ‘엄청난 아시아 부자들’이라는 책에는 ‘거만한’ 중국인들이 서구문화 특히 영국문화를 숭상하고 추종하는 현상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이들 중국 억만장자에게는 자식을 영국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거쳐 옥스포드나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시키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다.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면, 외국인 액센트가 전혀 없는 ‘킹즈/퀸즈 잉글리시’를 구사하는 세련된 영국신사로 대접받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같은 영국문화 숭상은 대영제국의 식민기지였던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여러 세대를 살아왔던 중국인들에 한정된 현상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약자인 한국을 대상으로 횡포를 부렸던 중국인들이, 한국영토 크기밖에 안 되는 영국의 문화를 모방 숭상하는 현상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 지도를 볼 때마다 나는 한반도가 중국이라는 큰 사자의 입에 물려있는 듯이 보인다는 불편한 생각이 든다. 태고에 지각변동으로, 압록강을 경계로 한반도가 중국대륙에서 분리되어 대만 근처까지 남하해서 섬나라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한국의 역사가 훨씬 평화롭고 행복한 역사가 되었으리라는 공상을 해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빨리 지구상에서 소멸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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