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앵콜클래식]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반 클라이번

2020-03-20 (금)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나는 우울할 때면 늘 북극의 음악들을 듣는다. 시벨리우스, 그리이그, 차이코프스키 등을 듣고 있으면 서늘한 겨울 정경이 떠 오르며 우울했던 마음이 진정되곤한다. 따사로운 햇빛, 밝고 아름다운 음악이 기분전환에 좋을 것 같은데 왜 일까?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가 종종 지나친 스트레스, 걱정 등 세상의 불순물이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음악을 ‘벙어리 기도’라고 했는지도 모르지만 북극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기도라고나할까, 마치 깊은 산중 전원 속에 파묻혀 명상에라도 잠기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기에 음악은 과학이나 학문에 속한다기보다는 4차원의 세계다. 즉 존재하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들리지만 결코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또 다른 세계이자 가상의 섬이기도 하다.

음악감상은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머리로 듣는 것과 다른 하나는 4차원의, 즉 가슴으로 듣는 것이다. 누구나에게 가슴으로 듣고 싶은 자기만의 음악이 있기 마련이다. 첫 눈 내리면 듣고싶은 음악, 혹은 젊은 시절의 시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등등. 내게는 아마도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그런 작품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곡은 너무도 대중적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겨울 서정이라곤할까 이곡을 듣고 있으면 늘 앙상한 가지 위에 눈발이 하나 둘 휘날리는 겨울 정경이 떠오르는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하면 또 반 클라이번이 떠오른다. 내가 자랄 때만해도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하면 방송에선 늘 반 클라이번의 연주만을 들려줬었다.


당시만해도 클래식 스타는 드물었고 스타라고 해봐야 카라얀, 번스타인, 클라이번(美, 1934-2013) 정도였는데 특히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1등했던 클라이번은 그 인기가 하늘을 찔렀었다. 물론 그 당시 다른 많은 콩쿨들이 있었지만 러시아가 특별히 제정한 콩쿨에서, 그것도 제 1회대회에서 당당하게 러시아 출신 후보들을 물리치고 1등한 클라이번은 전 세계에서 영웅대접을 받았다. 그가 1등을 했기 때문에 그의 연주가 덩달아 좋아보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음반은 당시 밀리언 세일을 기록하며 그 인기가 70년대까지 식을 줄 몰랐었다. 요즘 들어도 클라이번의 연주는 그 누구의 연주보다 듣기가 좋은데 아마도 가슴으로 듣게 만드는 젊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젊은 시절의 반 클라이번의 연주야말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만큼은 이래야 합니다’하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음악에도 색감이라는 것이 있다. 총천연색 상상력을 덧 입혀주는, 감성의 물감이라고나할까. 아무리 좋은 밑그림(작품)이래도 그 위에 칼러를 덧 입히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작곡가가 있고 연주인이 따로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피아노 파트의 색채감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감성적인 주제 선율 위에 파도 타기 하듯,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한 밑그림에 색채를 덧입혀 나가는 피아노의 역할은 마치 앙상한 가지에 나부끼는 입새… 쓸쓸함이 어우러진 겨울나그네의 폭발하는 반항, 낭만에 대한 향수가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폭풍적인 연주로 말한다면 베토벤 연주의 대가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레스 등의 연주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들의 차이코프스키 연주는 어딘가 너무 사납다. 그래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심사 위원을 맡았던 스비아토슬라프 리이터는 반 클라이번의 연주에 1백점 만점을 주었는지도 모르지만(리이터는 다른 후보자들에게는 모두 빵점을 주었다고 한다) 젊음과 패기, 뻥 뚫리는 듯한 클라이번의 연주는 테크닉과 씨름하던 러시아 연주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소련은 자신들의 예술적인 힘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창설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감성과 스케일에서 압도적이었던 클라이번에게 1등상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지애나 태생인 반 클라이번은 여섯 살 때 텍사스 주로 이주, 그곳에서 모친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뒤 12세 때 텍사스주 음악 콩쿨에서 우승했다. 이후 1954년, 당시로선 미국내 최고의 권위였던 '레벤트리트 콩쿨’에서 제1위로 입상하면서 자연스럽게 1958년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출전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결선에서 우승한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결국 현지 청중들의 전원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당시의 연주 실황이 유튜브에 나와있다)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