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거장 게르기예프가 발탁한 임주희
▶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릴 때마다 새로워”
피아니스트 임주희.
임주희가 그린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임주희 제공]
임주희가 그린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임주희 제공]
악상(樂想)을 떠올리는 듯한 눈망울이며 피아니스트 특유의 길고 하얀 손가락까지, 선우예권의 사진이 일러스트로 오롯이 옮겨졌다. ‘피아노 여제’로 불리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건조한 시선도 데생으로 표현됐다. 미술 전공자가 그렸나 싶은 그림들인데 그린 이는 피아니스트 임주희(19)다.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임주희는 “따로 그림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취미 삼아 틈틈이 연주자들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한 건 5~6년 전. 태블릿 등 별도 장비 없이 스마트폰 화면에 손가락만으로 그린다는 점도 독특하다. 취미라곤 했지만 예사롭지 않은 그림 솜씨를 눈 여겨 본 사람이 많았다. 한국 공연 전문지 ‘객석’의 김기태 대표도 그 중 하나였다.
올해 초 김 대표는 임주희에게 음악인 에세이 코너의 일러스트 작업을 제안했다. 그 결과 임주희는 지난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이달 첼리스트 이정란을 그려내 나름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임주희의 그림이 클래식인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비결은 예술가 특유의 분위기가 잘 배어있기 때문이다. 임주희는 “연주자의 표정 등 특징은 그 사람의 연주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누군가를 그릴 땐 사진을 보면서 그 연주자의 음악을 함께 듣는 편”이라고 말했다.
임주희는 자신이 그린 사람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를 두고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꼽았다. 임주희는 “여러 번 그릴 때마다 다른 특색이 나타나 즐겁다”고 말했다. 가장 그리기 어려운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보이는 모습에 차이가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그린 연주자는 대략 20명. 앞으로도 계속 다른 음악인들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임주희는 음악인으로서 재능도 남다르다. 세계적인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10세 무렵 임주희의 피아노 독주 영상을 보고 직접 발탁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쑤시개 수준의 짧은 지휘봉을 쥔 채 카리스마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르기예프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임주희와 한 무대에 섰다.
게르기예프는 임주희에 대해 “한국에 있는 친구 중 가장 어린 친구”라고 소개할 정도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임주희는 “게르기예프 선생님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무대를 호령하지만, 무대 밖에선 음악은 물론 일상생활 조언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분”이라고 말했다.
임주희는 올해 5월 일본 후쿠야마 뮤직페스티벌 참여 및 6월 천안시립교향악단과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공연, 7월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등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임주희는 “코로나19로 클래식 공연들이 취소되는 사태를 접하면서, 음악에서 청중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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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