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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팬데믹 대처방식은 남한식이 아닌 북한식

2020-03-16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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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병 발병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이러스의 동시적이자 우발적 분출이라는 점에서 자연재해와 흡사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손 놓고 앉아 치명적인 전염병이 물러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증거는 충분하다: 만약 정부가 일찌감치 단호하고 현명한 조치를 취했다면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를 조기에 꺾을 수 있었을 터이다. 안타깝게도 트럼프 행정부의 팬데믹 대처법은 그렇지 못했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다른 국가들로 번져나갈 무렵인 지난 1월 이후, 우리는 돌림병의 지역별 확산 속도를 추적할 수 있었다. 한국은 초반의 급속한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신규 확진자 수가 주춤대는 상황이었다. 홍콩, 싱가포르와 타이완 역시 중국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여행자들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낮은 발병추이를 그대로 지켜냈다. 반면 미국의 경우 확진 케이스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선방을 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먼저 감염 의심자들에 대한 검사를 조기에, 그리고 수시로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검사 결과를 토대로 감염자들을 신속히 격리조치하고, 그들의 동선을 파악해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다음에 어디서 환자가 나올 것인지를 예측했다. 이와 함께 적절한 예산지원으로 공중보건 시스템의 위기 대처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정부당국이 앞장서 신종 돌림병과 관련한 간단명료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 대중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아직 학계의 검토를 받지 않은 새로운 보고서는 개선된 검진법과 확진자들이 많이 나온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국의 이동제한조치가 아니었다면 2월말 현재 중국의 발병건수는 지금보다 67배까지 늘어났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중국이 단 1주일만 더 일찍 행동에 나섰다면 확진케이스는 지금보다 66%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곁들였다.

지난주 트럼프는 “(이런 위기를)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속 의학생물방위대책위원회 국장은 지난 2018년 연설에서 “팬데믹 플루의 위협이 우리의 넘버 원(No.1) 건강안보 우려”라고 지적하고 “바이러스를 국경에서 멈춰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녀가 연설을 한 바로 다음날, 백악관은 생물방어대책위를 폐지했다. (관련 녹취록을 제공한 뉴욕타임스의 팟캐스트 “더 데일리”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트럼프는 한 가지 대단히 좋은 결정을 내렸다. 지난 1월31일, 그는 중국 여행객들의 입국을 대부분 금지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얼마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확진검사가 낭패로 끝나면서 애써 벌어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만약 이것이 전쟁이라면 전투를 지휘한 장군들은 모조리 직위해제를 당했을 것이다.

딱 한 가지만 비교해보자: 5,000만 명의 인구를 지닌 한국은 지금까지 23만여 명의 감염증상자를 검사했다. 인구대비 검사 비율을 미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150만명이 확진검사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은 1만명이 공중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민간 연구소에서 검사를 받은 미국인들의 수는 이보다 조금 더 많다.) 국민 1인당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의 검사를 하는데 그친 셈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트럼프의 극적인 조치는 미 행정부의 바이러스 대응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거의 모든 유럽인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 있는 수 만 명의 미국인들은 분명 입국 금지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이미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발표가 나오기까지 그의 연설문은 수차례에 걸쳐 수정과 교정 과정을 되풀이했고, 일부 내용이 번복됐지만 그가 제시한 대응정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번 위기는 트럼프의 가장 나쁜 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은 전문가들을 싫어하거나 신뢰하지 않으며, 나름의 설명까지 제시해가며 마치 자신이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듯 행동한다. 평생 허세와 거짓을 일삼았던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과거의 구태를 이어가고 있다. 적어도 바이러스 감염증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거친 언행에 매료되거나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사람들은 그의 엄포에 겁을 집어먹는다.

글로벌한 규모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미국은 지도력을 발휘해가면서 전 세계에 위로와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 싸움에서 트럼프는 전쟁터를 무단이탈했다.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책임을 외국인들에게 덮어씌우고, 그같은 자신의 견해를 지탱해줄 정책을 발표했다. 현재 진행 중인 지구촌 시장의 광범위한 붕괴는 백악관의 지도력 공백에 대한 부분적인 반응에 다름 아니다.

트럼프는 자아도취자의 자기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무시할 뿐 아니라 정부 고위 관리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신의 지도력을 추켜세울 것을 요구한다. 행정부의 과학관련 부처 수장들까지 그들의 성명서 서문을 “친애하는 지도자”를 향한 찬양으로 채우는 것은 보기 역겹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베끼기는 번지수가 틀렸다. 남한의 통찰력과 전문지식 대신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북한의 지도자 숭배와 무능, 정치선동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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